113 소망의 풍성함 '온전한 믿음' 굳게하라

2013. 10. 23. 00:52김성수목사님

113. “소망의 풍성함”“온전한 믿음”“굳게하라”

- 에베소서 (69) ‘세월을 아껴서 해야 할 일(II)’본문기록...

 

여러분은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고 오늘 당장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계십니까?

그런 거 별로 생각해 보신 적 없으세요?

이건 아주 유아적 질문인 것 같지만 우리가 꼭 정리해 두어야 할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문제를 아주 소홀히 여기며 심지어 무관심합니다.

다른 질문을 하나 더 드리죠. 그럼, 우리는 구원을 언제 받습니까? ““창세전에””

 

(엡1:3-5)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러면 그들은 날 때부터 그리스도인으로 납니까? 아니죠.

그들이 비록 창세전에 하나님에 의해 택함을 받았다 할지라도

각자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누군가에 의해 복음을 전해 들어야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책이나 성경을 통해서..

 

(행18:9-10)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사도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중에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테네를 거쳐 죽을 고생을 다하고

고린도에 이르렀을 때 또 유대인들이 그를 훼방하고 조롱했습니다.

바울이 심히 낙심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성에 내 백성들이 많이 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해라””

창세전에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린도 성에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직 복음을 전해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구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창세전에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기 전까지는

여전히 구원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렇게 전하는 자에 의해 복음을 듣게 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 귀를 여시고 복음을

이해시켜 주십니다.

 

(행16:14)

14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 창세전에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신학적인 용어로 ““예정론””이라고 합니다.

한 사람도 실패하지 않고 다 구원해 내십니다.

애굽에서 60만명이 광야에서 다 죽고 민수기에서 새로운 60만명이 다 살아나는 것은

하나님은 실패치 않고 다 구원해 내신다는 상징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구원은 그 것으로 끝나는 것인가? 우리가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시고 그 예정 안에 들어있는 자들은 반드시 구원해 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구원의 여정에 우리의 손발을 움직여 동참하도록 요구하십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다하시면서도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일을 시키십니다.

자꾸 믿어라 하십니다.

비근한 예로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행16:30-31)-빌립보 감옥에서 사도바울이 간수에게 한 말

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이렇게 성경에는 이율배반적인 내용들이 많이 있어요 자세히 알고나면 너무나 논리적인 애기 입니다.

 

(요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능동적인 행위가 필요..

 

(롬10:13)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만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시고 그들에게만 귀를 열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과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우리를 함께 동참시켜 주십니다.

 

(롬10:14-15)

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보세요.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라, 그래야 구원 얻는다.”해 놓고 “저희가 믿지 않는 자를 어찌 부르리요”

라고 합니다.

그 말은 “우리가 예수를 믿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셔야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 믿음을 주시기 위해 전파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죽이시는 십자가의 사건 이외의 구원의 전 과정”에

우리를 동참시키십니다.

(중간생략)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데 다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의 삶이 전부 그런겁니다.

하나님이 다 이루시지만 무언가를 하나님이 시키시는 겁니다.

 

(창28:10-15)

10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 하란으로 가다가,

11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자다가,

12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13 주께서 그 층계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주,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14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이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가 누워있는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그리고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고 사방으로 퍼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분의 계획대로 바로 만들어 내지 않으시고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나는 지금 이러 저러한 계획을 갖고 있는데 나는 내가그 계획 이루는 데 너를 동참시킬 것이다,

그러나 네 힘으로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너를 도와 나의 계획을 이루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야곱은 그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죽도록 고생을 합니다.

그 야곱이 겪은 20년간의 삶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시키는 데 꼭 필요한 시간들이었던 것입니다.

 

(수1:1-9)

1 주의 종 모세가 죽은 뒤에, 주께서, 모세를 보좌하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2 "나의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스라엘 자손 곧 모든 백성과 함께 일어나,

     요단 강을 건너서, 내가 그들에게 주는 땅으로 가거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대로, 너희 발바닥이 닿는 곳은 어디든지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4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 큰 강인 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헷 사람의 땅을 지나 서쪽의 지중해까지,

     모두 너희의 영토가 될 것이다.

5 네가 사는 날 동안 아무도 너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내가 모세와 함께 하였던 것과 같이

    너와 함께 하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겠다.

6 굳세고 용감하여라. 내가 이 백성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을, 이 백성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사람이 바로 너다.

7 오직 너는 크게 용기를 내어,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지시한 모든 율법을 다 지키고,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8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 것을 공부하여, 이 율법책에 씌어진 대로, 모든 것을

    성심껏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가는 길이 순조로울 것이며, 네가 성공할 것이다.

9 내가 너에게 굳세고 용감하라고 명하지 않았느냐! 너는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주, 나 하나님이 함께 있겠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시는 장면입니다.

““내가 모세에게 약속한 것처럼 너희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들어가서 싸워서 빼앗아 가지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싸울 때 내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시지 “내가 다 싸워서 뺏어 줄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는 전 과정에 우리가 힘써 해야 할 부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성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분명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싸워야 할 전쟁이 있는 것이고 겪어야 할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오히려 한 동안은 구원 얻기 전의 옛 사람과 더 친한 삶을 살게 됩니다.

어떤 때는 오늘밤에 죽으면 내일 아침에 천국에서 눈을 뜰 수 있다는 또렷한 확신에 차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순간은 아주 간혹 이지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진짜 내가 구원받은 사람이 맞나?””

하는 두려움 혹은 무관심의 상태로 보내게 됩니다.

(중간생략)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그 구원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의심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조금 씩 조금씩 씻겨가게 되고 우리는 점점 더 뚜렷한 확신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땅의 삶은

(1)아직 복음의 소식을 듣지 못한 창세전에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 복된 소식을 삶으로 입으로

     전하도록 주어진 시간이며

(2)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구원을 점점 명확하게 깨닫고, 그 구원을 값없이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감사로 말미암아 그들의 성품과 인격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로 점차 바뀌어 가는

    다시 말해 거룩과 성령 충만과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걸어가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인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삶의 의미이며 목적이라면 우리가 우리에게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그 귀한

““시간””을 아껴서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1) 입으로 삶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해야 하겠죠? 그리고

(2)내가 구원받은 자라는 사실을 점점 확실하게 깨닫고 지금은 이렇게 자주 흔들리지만, 흔들리지

     않는 믿음위에 굳게 서는 자로 지어져 가는데 우리의 시간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진짜 감사가 나오게 되겠죠?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그게 감사로 이어지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진짜 감사가 나오게 될 때 우리의 삶의 행동이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시간을 아껴서 해야 할 일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점점 명확하고 또렷하게 확인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우리는 이 땅에서 보이지 않는 저 영원한 세상을 확신 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인가?

 

(히6:11-12)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엘피스έλπίςG1680)의 풍성함(플레롭호리아πληροφορίαG4136-확신)에 이르러

                                                                             -플레롭호레스G4135에서 유래-완전히 수행하다.완전히 확신하다(믿다,알다)

                  - 플레도πλήθωG4130;채우다,감화시키다...+훼로φέρωG5342;참는다,감당하다,인도하다,도달하다,지탱하다....

                       에서유래(기본동사,기본어)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여기서 11절의 ““소망의 풍성함””이라고 번역이 된 부분 ““플레로 포리안 테스 엘피도스””

(πληροφορίαν της ελπίδος )“소망의 확신”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서 기자가 “너희는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구원의 확신에 이르도록 하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구원을 받은자 할 지라도 우리는 부지런히 구원의 확신을 향해 손발을 움직여서 그 곳에 도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10:22)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알레디노스άληθινόςG228-진실한) 마음(카르디아καρδίαG2588)과

-알레데스άλθήςG227;참된 에서 유래:

  (1(부정적 불변사로서)+란다노λανθάνωG2990-;감추다,무지하다,깨닫지 못하다...

온전한(플레롭호리아πληροφορίαG4136-확신) 믿음(피스티스πίστιςG4102) 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여기서 ““온전한 믿음””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도 역시 같은 단어입니다.

플레로 포리아 피스튜스”“확실한 신뢰”라는 뜻입니다.

(πληροφορία πίστεως)

그러니까 우리는 “확실한 신뢰”“확신”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질 수 있다는 것이죠.아니면 회개해야 합니다.

 

(딤후1:12)

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사도 바울은 이렇게 확신 속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돌에 맞아 거의 죽게 되었다가 깨어나자마자 자기를 돌로 쳐서 죽이려 했던

루스드라 성으로 다시복음을 전하러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벧후1:10)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베바이오스βέβαιοςG949-흔들이지 않는)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바시스βάσιςG939-걷다에서 유래 ‘걸음’‘발’의뜻 에서 유래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프타이오πταίωG4417-넘어지다,잘못하다,죄를짓다,실패하다,슬픔에 빠지다,저지지르다등)

              - 핍토πίπτωG4098;떨어지다,넘어지다,마주치다등에서 유래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굳게하라”“베바이안βέβαιαν”도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신앙생활의 지향점은 거룩, 성령 충만, 하나님의 영광,

다른 말로 “확신”이어야 합니다. 확신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우리는 거룩의 삶 성령 충만의 삶,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의 확신이 전혀 없거나 자주 흔들리면서도 전혀 아무런 노력이나 시도도

해보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챨스 스펄전의 책에서 그 분이 구원의 확신에 대해 하신 말씀을 제가 인용을 해 놓았습니다.

handout을 잘 보세요. 제가 읽겠습니다.

“자기가 진정으로 거듭났는지를 의심하는 사람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그 의문이 저절로

풀릴 때까지 태평스럽게 기다리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눈을 붙이고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지옥을 정말 안다는 사람이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밥이 목으로 넘어갑니까? 지금 자기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 되지 않아서

이미 정죄 되었는지도 모르고, 숨이 넘어가거나 심장이 멎기만 하면 곧 지옥으로 가게 되는 그런 상황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태평할 수 있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직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숨이 끊어지고 심장이 멈추는 순간 그와 더불어 여러분의 인생은 마감됩니다. 여러분의 생애는 끝납니다.

오늘밤이 바로 그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

이런 모호한 상태에서 벗어나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열심을 내어 부지런히 그 확신을 챙기셔야 합니다.

실제로 그러한 확신 속에서 아주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수많은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일화가 책이나 구전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익히 잘 아시는 요한 웨슬리가 탔던 배의 모라비안 교도들이 실제로 풍랑 앞에서

즐겁게 찬양을 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이런 일화도 있습니다. 1848년에 증기 여객선 오스트리아 호에 화재가 나서 그 배가 대서양에 침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때 물에 빠져 죽은 사람만 400명이었습니다. 거기서 살아남은 어떤 그리스도인의 간증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배가 점점 시커먼 바다 속으로 침몰해 들어가고 이제 그들이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분은 거기에 함께 있었던 친구들 다섯 명과 함께 손을 꼭 잡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쳐다 보면서

““우리 잠시 후에 천국에서 만나자””하고 기쁘게 바다로 뛰어들었답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그 수많은 신앙이 선배들이 전부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신앙을 지켜내지 않았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없이 어떻게 그런 순교자 적 삶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신앙인들은 자기가 신앙하고 있는 바에 대한 확실한 신뢰를 향해 시간을 아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러한 확신에 대해 무감각하며 무관심하며

게으르게 자신의 시간들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삶에 변화도 없고 힘도 없고

세상과 싸우기는커녕 늘 우울하고 두려움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