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목사님

94.계시 (하나님의 말씀) ,예언자,선지자(하나님의 말씀을,전하다)

jaeim1028 2013. 8. 10. 17:41

서울서머나교회

94.계시(하나님의 말씀),예언자,선지자(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

                   에베소서90: 믿음의 방패(II) - 본문기록...

(엡6:13-16)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 자료실 94-1번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 우리가 악마의 화전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항상 믿음을 굳게 붙들고 있어야 믿음이 발휘될 수 있으며

그 믿음의 발휘를 가리켜 ‘믿음의 방패’라고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계시’를 통해 오게 되는데 그 ‘계시’는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며

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해되어 질 때 비로소 그 성경 말씀은 계시로서의

효과를 발휘 할 수 있음을 주지시켜 드렸습니다.

이해되어지지 못하면 방언에 불가합니다.

그러니까 이 성경은 우리 성도들에게는 계시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냥 도덕과 윤리, 혹은 허구를 기록해 놓은 허무맹랑한 잡지가 되는

것입니다.

....(중략)

어떤 사람들이 지금도 하나님으로부터 직통 계시를 받아서 그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것을 무지한 사람들이 ‘예언’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마치 그런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인 양 허세를 부리지요.

그러나 성경의 예언은 미리 예(豫) 자가 아닌 맡길 예(預)자 예언(預言)이라고 했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불가불 세상에 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예언자 혹은 선지자라 부른다고 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예언자를 히브리어로 ‘나비נביאH5030’로 표기합니다.

그 ‘나비נבאH5012’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라는 의미의 ‘나바נבא’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서도

‘예언자’를 헬라어로 ‘프로페테스προφήτηςG4396;미리 말하는자,선지자’라고 표기를 하는데

                               ( πρό 프로G4253;~앞에+φημί훼미G5346;사람의 생각을 ‘보여주다’‘알게하다’)의 합성어에서 유래

                              * 어간참고:화이노 φαίνωG5316;밝게 하다 보이다,비치다

이 말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라는 의미의

                 ‘프로페테우오G4395;'영감으로 말하다,예언의 직무를 실행하다,사건들을 미리 말하다.to prophecy’

                     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이라는 말은 앞일을 예견하는 prediction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전달하는 prophecy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의 예언은 모두다 ‘죄인들의 멸망과 회개의 촉구’였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이게 예언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그 예언은 모두 ‘왜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필요한가?’를 깨우치는 예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모든 선지자, 예언자들의 예언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수렴되는 것들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에는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 ‘구원’이라는 울타리 밖의 예언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예언과 비교해서 오늘 날 어떤 사람들이 받고 있다는, 인간의 길흉화복이나 점 쳐주는

그러한 가짜 예언은 오히려 믿음과 전혀 상반되는, 믿음의 방패를 부수어 버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은 ‘이 세상 것은 다 멸망할 것이니까 하늘의 것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자로 결론이 나야 하는데, 혹자들이 한다는 그런 유의 예언은 여전히 이 세상 왕국에 눈을 두고 있는 사람들의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더욱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액운을 피하고 길한 삶을 찾아 갈 수 있을까?‘를 충족시켜 주는 마귀 적 예언인 것입니다.

그런 것은 절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진짜 믿음은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의 종말과 눈에 보이지 않는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를 올바로 인식하고, 깨닫고 그 계시를 삶 속에서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가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계시가 이해되어지고 그로 말미암아 믿음의 생겨서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의 자기 앞날이 왜 궁금하지요? 왜 또 다른 계시와 또 다른 예언이 필요합니까?

우리는 계시를 통해서, 성경의 예언을 통해서, 이 세상이 곧 멸망할 것이고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포함한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을 ‘분토'처럼

여기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항복하는 삶을 입으로 전하고 몸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다가 아니고 새 세상이 온다. 너희는 그 새 나라를 준비하라’ 그

게 올바른 예언을 깨달은 성도들의 지향점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이해하고 있는 성도들은 모두가 예언자이며 계시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아직 오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분명히 올 나라로 믿고 있고,

그러므로 그 나라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역사를 살다간 모든 예언자들은 사람들이 ‘힘을 쌓아서 자기들 힘으로 행복하게 잘 살아 보겠다.’고

하는 그 꿈을 무참하게 짓밟아 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늘 쫓겨 다녔습니다.

 

(사50:4-6)

4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귀를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그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해서 전했더니 사람들이 돌로

치더라는 것입니다. 이게 선지자, 예언자의 삶인 것입니다.

그 예언자의 완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 설명1).....

(렘20:7-10)

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8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0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이게 바로 믿음의 방패를 들고 의심과 낙심과 고통의 화전을 막아내며 ‘예언’을 하는 자들의 삶인 것입니다.

* 설명2)...

(사20:1-6)

1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

2 곧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일러 가라사대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니라

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게 되었느니라

4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 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뵈이리니

5 그들이 그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을 인하여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6 그 날에 이 해변 거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

 

하나님께서 애굽과 구스를 멸망시키실 것을 이사야를 발가벗겨서 그의 몸과 삶을 통해 예언을 하십니다.

이사야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예언자들의 삶은 모두 다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다가 세상으로부터 돌을 맞지 않으면 이렇게 자신의 삶으로 경고의 메시지를

담아 부끄럽고 고단한 삶을 살다가 간 것입니다.

이러한 이사야의 예언과 계시의 삶이 어디에서 완성이 됩니까?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이 되지요.

발가벗겨져서 회개하지 않고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의 말로가 어떠한 것인지를 몸으로 보여주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닙니까? 그 분이 바로 참 선지자요, 참 예언자이십니다.

모세가 ‘나와 같은 선지자’가 오실 것이라고 예언했던 그 참 선지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셨던 것입니다.

이사야나 예수 그리스도는 발가벗은 몸을 가리기 위해 스스로 나뭇잎으로 치마를 해 입었던 인간의 도모를 낱낱이

고발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부나 명예나 지식으로 너희의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애를 쓰고 살고 있지만 너희는 결국 이렇게 발가벗겨져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 설명3)...

(사21:1-4)

1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남방 회리바람 같이 몰려 왔도다

2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주께서 가라사대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3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임산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내게 임하였으므로 고통으로 인하여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4 내 마음이 진동하며 두려움이 나를 놀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할 때도 이사야가 요통으로 허리가 끊어지는 아픔을 겪습니다.

요통이라고 번역이 된

      요:히브리어 ‘모텐 מתןH4975'-가냘프다,허리,옆구리..(추가)

      통:히브리어 ‘할할라חלחלהH2479-(해산으로)고통하는,공포,근심’라는 단어는

    ‘꼬이다'라는 뜻의 '훌'이라는 단어의 파생어입니다.

* 개인적 묵상...

    (코드를 찾지 못하였으나..후르חלH2352-‘뚫다’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근에서 유래.

      뱀들이 있는 ‘갈라진 틈’‘감방’‘구멍’‘굴’의 의미의 유사성으로 꼬이다라는 단어를 묵상해 봅니다.)

 

그러니까 극심한 허리 통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바벨론의 멸망의 아픔을 몸으로 겪으면서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멸망하게 될 것인지를 예언자가 자신의

몸으로 겪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는 모두 하나님 백성들의 구원과 돌이키지 않는 세상의 심판, 그리고 결국에 완성이 될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계시를 예언으로 토해내는 선지자들은 그 구속의 내용을 인생 속에서

경험하며 살게 되는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 소리도 듣게 되고, 때로는 돌에 맞아

거반 죽게도 되는 것입니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예언‘입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어떤 사람이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 그 사람이 하는 예언은 100% 다 맞아야 합니다. 99%만 맞아도 안 됩니다.

진짜 그런 은사 받은 사람 있으면 저 좀 소개시켜 주세요. 없습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해서 올바로 전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올바른 예언은 성도의 믿음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