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목사님

라 ,루아흐, 악한성령

jaeim1028 2013. 8. 26. 12:36

95. ‘라 루아흐’ ‘악한 성령’

           - 사사기(20)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세상 왕들의 종말'본문중에서

(삿9:17-24)

17 우리 아버지가 전에 죽음을 무릅쓰고 너희를 위하여 싸워 미디안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었거늘

18 너희가 오늘날 일어나서 우리 아버지의 집을 쳐서 그 아들 칠십 인을 한 반석 위에서 죽이고

     그 여종의 아들 아비멜렉이 너희 형제가 된다고 그를 세워 세겜 사람의 왕을 삼았도다

19 만일 너희가 오늘날 여룹바알과 그 집을 대접한 것이 진실과 의로움이면 너희가 아비멜렉을 인하여

     즐길 것이요 아비멜렉도 너희를 인하여 즐기려니와

20 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 족속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 족속에게서도 불이 나와서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

21 요담이 그 형제 아비멜렉을 두려워하여 달려 도망하여 브엘로 가서 거기 거하니라

22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삼년에

23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라רעH7451) 신을(루아흐רוּחH7307)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24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인에게 행한 포학한 일을 갚되 그 형제를 죽여 피 흘린 죄를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서 그 형제를 죽이게 한 세겜 사람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악으로 연합이 되어 있던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에게 악신을 보내십니다.

23 절의 악한 신은 ‘라 루아흐’입니다. 직역을 하면 악한 성령입니다. 악한 성령이라는 어구의 조합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성령은 절대 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악한 성령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로마서 1장으로 가면 그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롬1:24)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여기에서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셨다는 말이 나옵니다.

거기에 쓰인 ‘파라디도미’πβραδίδωμιG3860라는 동사는 붙들고 있던 것을

‘넘겨주다, 놓아주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령께서 죽은 흙을 어거하며 붙들고 계시던 손을 놓아버리는

형국입니다. 그때 타락한 피조물, 즉 죽은 흙들이 죽음의 잔치를 벌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강퍅하게 하셨다고 할 때, 그 의미가 하나님이 바로를 악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원래 바로 안에 들어 있던 악을 하나님께서 제어하지 않으시고 놔두시며 그 악을 당신의 목적에 맞게 쓰신 것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악한 신을 보내셨다는 말은 악하지 않은 그들을 일부러 악하게 만들어

버리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악의 조성 자가 되시니까요. 그 말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일반 은총을 거두어 버리심으로 말미암아 죽은 흙들의 본질적 성향을 그대로 드러나게 하셨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때 그 속에서 분열이 일어납니다. 악의 본질이 그대로 폭로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라고 하는 우리들을 하나님의 장중에서 벗어난 사람들처럼 그렇게 놔두실 때가

있지요? 하나님이 말려주실 만도 한데 안 말려 주시고 그냥 놔두셔서 우리 자신의 악마성을

그대로 폭로 당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성령을 받은 성도가 가장 아프고 괴로울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하시는 일이 무엇이라고 했지요?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그동안 우리가 죄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작은 것들까지도 전부 끄집어 내셔서

죄로 진열을 해 보이십니다. 그러한 죄는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도저히 자기들의 의로

그 심판을 모면할 수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준비하신 하늘의 의가 선물로 주어졌다는

복음의 현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의 맨 앞줄에 서 있는 것이 죄에 대한 자각인 것입니다.

그게 악신이 임한 하나님 백성들의 상태인 것입니다.

성도는 사업이 망하거나, 병에 걸리거나, 명예가 손상되거나 할 때보다 자신 안의 마귀적 성향이 스스로에게

들켜질 때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그때 성도는 왕이 되고 싶어 하던 육적 자아의 욕망에 타격을 입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실체를 폭로당하다가 급기야 ‘내가 죄인 중의 괴수’라는 처절한 고백을 하게 될 때

성도의 육적 자아는 완전히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이 땅에서 온전하게 성취 될 수 있는

문제의 것이 아닙니다. 지향성의 문제인 것입니다. 성도의 육적 자아가 그렇게 분열과 난항을 겪으면서 지리멸렬의

길을 가게 되고, 육적 자아의 멸망의 길을 가게 될 때,

자신을 향하던 왜곡된 사랑이 하나님과 이웃에게로 나누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성도의 지향성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내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들어와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