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목사님

107,견고한 망대 'strong tower, 자기부인, 자기삭제

jaeim1028 2013. 9. 23. 17:57

107.견고한 망대 ‘strong tower’,자기부인,자기삭제.

   로마서(32)-지붕을 세우고 당을 짓는 자들, 지붕을 벗기고 흩으시는 하나님(III) 본문중에서...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으로 존재가 채워질 때 비로소 성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끊임없이 행복의 하늘을 향해 벽돌과 역청을 쌓아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건 기특한 시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이 바벨성 건설의 에피소드가 어디에 이어져 있는 것입니까?

노아의 홍수 사건 바로 뒤에 붙어 있는 에피소드입니다.

왜 하필 이 바벨탑 사건이 노아의 홍수 사건 바로 뒤에 붙어있는 것일까요?

인간들의 바벨론 건설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무례하고 패역한

행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홍수 후에 인간들이 생각해 낸 것이 고작, 탑을 하늘까지

쌓아서 홍수를 면하자는 방법론적 해석에 머물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들의 바벨론 건설, 당 짓기의

첫 번째 패역함이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에 닿아 하나님처럼 행복하게 살아보겠다.’는 시도였다면

두 번째는 ‘이름을 내고’입니다. 다시 창세기 11장 4절을 보겠습니다.

 

(창11: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인간들의 당 짓기 안에는 인간들의 자기 이름 내기라는 죄 성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름을 높여서 자기를 지켜내는 성이요 망대로 삼으려 최선을 다합니다.

사람의 명성은 곧 그 사람의 가치로 환산이 되기 때문에 이름이 높아질수록 그 이름이 자신을

지켜주게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확하게 반대로 이야기를 합니다.

 

(잠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오즈עזH5797-강함,힘,능력) 망대(미그달מגךלH4026-(피라밋 모양의)‘화단’,강단,성,꽃..)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사람의 이름은 역사 속에서 삭제되고 부정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사람의 이름이 절대 자신을 보호하는 성전이나 망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가는 것이 성도의

본무이지 자신의 이름을 내어 하나님의 일을 돕는 자가 되는 것이 성도의 본무가 아닌 것입니다.

여기에서 견고한 망대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는 정확하게 번역을 하면 ‘strong tower’입니다.

정확하게 바벨탑과 대조가 되는 개념인 것입니다.

 

인간들은 자기들의 이름을 낼 바벨탑이 ‘strong tower’라고 생각을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strong tower’라고 하신단 말입니다. 시편 118편을 보겠습니다.

 

(시118:25~26)

25.여호와여 구 하옵나니 이제 구원 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 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26.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 하였도다

      복 있는 자는 누구의 이름으로 와야 합니까? 여호와의 이름으로 와야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누구시지요? 예수님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셨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성을 삭제 당한 채 오셨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신 분에 의해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삭제 당하고

다른 이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계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새 이름을 주십니다. 그 말은 인간으로서의 명성과 인기는 전부 부정되었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훌륭한 업적과 공로와 행위를 내어 놓아 자신의 명성을 쌓는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가면 그 이름을 삭제 당하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 역사 속 행위를 근거로 어떤 상도 마련해두고 계시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건 이사야서에서도

이미 예언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62:1~2)

1.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2.열방이 네 공의를, 열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시면서 그들에게 새 이름을 주실 것이라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하늘 백성으로의 회복은 자신의 이름을 내고 유명해 지는 쪽으로 지향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리는 쪽으로 지향되는 것입니다.

 

(계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성도의 이마에 누구의 이름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 주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는 약속은 ‘네 이름을 빼앗아 버리고 창대한 이름으로 바꿔 주겠다’는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지라

 

이렇게 성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바꾸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건 자기 자신의 존재성의 상실을

말하는 것이고 예수의 은혜라는 보자기 밑에서 다시 살아나게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세력은

끊임없이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 바벨론 건설을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위해 하늘로 향하던 바벨론의

실체를 요한계시록이 어떻게 묘사를 하고 있는지 보세요.

 

(계17:3-5)

3.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 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4.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 하더라

5.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바벨론의 특징이 뭡니까? 온 몸에 세상의 이름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이름을 위해 열심히 바벨론의 삶을 살고 있지 않나요?

다니엘서로 가면 그 자기 이름 내기 좋아하는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잊지 마세요. 바벨론 왕은 항상 ‘나’라는 것을.

 

(단4:29~30)

29.열 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 새

30.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바벨성, 즉 바벨론의 왕인 느부갓네살이 그 도성을 자랑합니다.

그 바벨론은 자기가 자기 힘으로 세웠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위엄과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게 바로 바벨탑 쌓기 현장에서의 인간들의 모습이었잖아요? 그리고 그건 곧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고요.

그때 바벨론 왕이 어떻게 됩니까? 광야로 쫓겨나서 7년 동안 소처럼 풀을 뜯어먹게 되는 벌을 받습니다.

 

(단4:33)

33.그 동시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았었느니라

32절을 보면 왜 바벨론 왕이 그러한 벌을 받게 되는지가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단4:32)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니

 

이유가 뭡니까? 7년간의 광야 생활을 통하여 자기의 이름과 명성을 삭제 당하고 부정당하는 것입니다.

‘네가 뭘 지었다고?’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자신에게서 일어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벨론 건설, 역사 속 성전 건설, 죄인들의 당 짓기가 하나님에 의해 공격을 당하는 것이 성도들의

인생인 것이며 그 결과 성도들은 하나님의 주인 되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깨닫게 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34절로 가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어떤 고백을 하는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단4:34)

34.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 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어때요? 바벨론 건설의 주역인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자신의 이름을 자랑하다가 7년간 광야에서 풀을 뜯어 먹는

경험을 합니다. 바벨론의 왕이었던 자가 짐승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전도서 3장에도 나오지요?

사람의 인생의 목적이 뭐라고 해요? ‘내가 짐승입니다’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전3:18)

다니엘서 5장으로 가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왕을 짐승으로 밀어 내리셨던 이유가 좀 더 명확하게 기술이 되어

있습니다.

 

(단5:20~21)

20.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 왕위가 폐한바 되며 그 영광을 빼앗기고

21.인생 중에서 쫓겨나서 그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 나귀와 함께 거하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게 되었었나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광야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가 가입하지 않았을 때에 자기

자신은 스스로의 이름을 위해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짐승에 불과한 자라는 것을 올바로 인식을 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데에 소용되는 것입니다.

그게 아담이라는 첫 번째 이름을 하나님에게 빼앗기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새로 부여받게 되는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한 구원의 현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가장 먼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자기의 존재성을 박탈당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름을 빼앗기는 삶을 사신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새 이름을 수여 하셨습니다.

 

(빌2:7~9)

7.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의 왕이신 예수가 이름을 빼앗기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새 이름이 주어집니다.

그러니까 새 이름의 수여 이전에 반드시 선행이 되어야 하는 것은 ‘나’라는 육적 존재의 죽음인 것입니다.

그래야 새 이름이 주어집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인생은 내 이름이 부수어지고 예수의 이름이 오롯하게 드러나게

되는 죽음의 행진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까 이사야서에서 바벨론을 뭐라 불렀지요? 계명성이라 불렀지요?

그 계명성은 새벽별이라는 뜻입니다.

그건 자신이 계명성이라고 우기는 타락한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비아냥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으로 가면 진짜 새벽별이 누구인지가 드러납니다.

 

(계22:16)

16.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 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누가 진짜 계명성입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렇게 성도는 바벨론 왕으로서의 자신의 이름을 부정당하고 삭제 당하는 과정을 통과하며 결국에는

그 이름 전체를 예수님에게 빼앗기는 삶을 살아야 맞는 것입니다.

 

(계2:3)

3.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보세요. 성도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못 살도록 끌려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만 살도록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차압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뭐 대단한 일을 하는 자로 성숙된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면 존재일 수도 없는 자로 드러나게 된다는 그런 말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이름과 예수님의 영광이 돋보이게 되고 찬송 받게 되는 것이니까요.

 

(행15:16~17)

16.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사43:7)

7.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보시다시피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자로 지어진 존재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성도의 실존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