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채무자, 빚진자, 용서...
서울서머나교회
110. 채무자,빚진자,용서.... - 산상수훈(41).하늘 양식이 우리 안에서 만들어 내는 것 ,- 용서...강해말씀기록...
본문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청원이 나옵니다.
우리가 하늘의 양식을 옳바로 받아 먹게 되면 가장 먼저 나타나게 되는 것이 “용서”라는 현상이 나타나는 이야기 입니다. “용서” – 그게 구원의 핵심 아닙니까? 그런데 이 구절을 원문으로 보게 되면 “죄”라는 단어가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G266”가 아니라 옵헤일레테스(όφειλετης/G3781채무자)(옵헤일레마όφείλημα/G3783부과금)로 쓰여졌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죄라는 단어는 거의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로 기록 되어 있습니다. 하말타노ἁμαρτάνω/G264에서 유래 그 단어의 의미는 “과녁을 벗어나다”. “제 짝이 아니다”라고 그랬지요! 그 단어 자체가 “과녁을 벗어나다”라는 뜻도 있지만 “하ἁ”라는 부정 접두어 에 “메로스μέρος/G3313”가 창세기로 가면 하나님께서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고 했을 때 그 “쩨라/צלע/H6763”라고 하는 단어가 갈비뼈가 아니라 부분(반쪽)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메로스라는 단어인데 하 + 메로스 = 그 짝이 아니다 “- 그러면 그것이 죄이다. 그 단어가 1.하마르티아”입니다.
그러니까 내 남편을 엉뚱한 것으로 붙여 버리면 그것이 “죄”이다(하마르티아). 그러면 그렇게 엉뚱한 대상을 내 남편으로 붙들어 버리면 거기에서 발생되는 엉뚱한 열심히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지 않고 율법으로 받아 그 남편으로 삼아 버리면 그 율법은 나를 열심히 행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독려뿐만 아니라 협박하게 됩니다. 그렇게 내 남편에 의해 강요된 행위를 내가 하게 되면 그 모든 것들을 모두“죄”(하마르티아)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죄는? 하나님이 아닌 그 다른 대상 진짜 내 짝이 아닌 다른 짝 그것을 내게 붙여서 그걸 숭배하게 하는 것이거나 그것에서 발생하는 엉뚱한 과녁을 향하는 그런 열심 – 이것을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세상에 속해있는 그런 상태에 대한 인간 실존의 현주소 이게 하마르티아(죄) 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을 설명해주시기 위해 우리의 인식 수준에 맞는 아래 것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있지요. 호 코스모스(ὁ κοσμος/G2889)아래에 모든 것들이 다 그 것이란 말입니다. 그냥 그것을 표피적으로 그냥 인식함으로 해서 잘못된 짝으로 그것을 취해버리거나. 그 표피적 말씀을 몸으로 열심히 행해버리면 그것을 “죄”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죄는 하마르티아가 아닌. 2.옵헤일레테스(όφειλετης/G3781채무자가 진 “빚” 입니다. 마땅히 행하여 할 의무도 있습니다. 마땅히 갚아야 할 빚을 갚지 않거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그 것이 바로 “죄”라는 것이죠. 여기서 말하는 “마땅히 행해야 한다”는 말은 율법적인 그런 말이 아닙니다. 신약 성경이 쓰여졌을 당시의 사회 문화적 관습을 고찰해보면 당시 유대인들은 “일하지 않는 것”그리고 마땅히 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행하지 않는 것을 죄의 범주에 넣는 것은 분명합니다. 주님께서도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하시는 것이 일하지 않는 자는 못 먹는다는 뜻입니다.(살후3:10)
주님은 “옵헤일레테스”의 문제를 해결을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지니고 있는 그 “빚 을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니까 둘 다 같은 뜻이다. 그것(빚)을 먼저 확인 해 봅시다. 그것을 갚지 않고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 죄라고 하시니까! 반드시 그것을 규명하고 가야 하는 것이죠!
(롬1:13-15 ) 13.형제들아 내가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고건법: 반드시 내가 알기를 원한다)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 진 자라(바울의 고백)
바꿔 말하면 “내가 만약에 갚지 않으면 너희 들에게 죄인이다” 이런 말입니다.
15.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답이 나왔습니다. 바울이 빚 진 자로서 빚을 갚는다는 게 무슨 말이지요? 복음전하는 것입니다. “옵헤일레테스όφειλετης/G3781” 바울은 반드시 그 빚을 갚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15절에서 그 빚은 복음의 빚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지요 성도는 반드시 복음의 빚을 갚는 자로 살게 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사하여주옵시고/압히에미ἀφίημιG863 =(압헤스도,과거명령형 시제) -우리에게 반드시 완성 될 수 밖에 없는 어떤 것... 아니 - 이미 완성된 그 것을 청유하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과거명령형 시제의 뜻) 성도는 반드시 빚을 갚아 용서를 전해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 “살게 되어 있다”라는 그런 말 입니다.
자 그게 무슨 말인지 차근 차근 설명해 드릴께요! 바울은 진리를 전해 받아서 그것을 마음으로 받은 자신을 “빚진 자”라고 표현을 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로마서 8장에서는 이렇게도 말을 합니다.
(롬 8:12-13)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형제들아 우리가 빚 진 자다. 그러면 당연히 빚을 갚아야 되는데 육신으로 빚을 갚으면 너희는 반드시 죽는다. 이런 뜻입니다.그러니 “영으로 그 육신의 빚 갚음”- 그것을 죽여라 그런데 영은 퓨뉴마” = 옳바른 말. 깨끗한 말. 진리의 말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란 말이. 사람들이 이것을 너무 쉽게 간과해 버리는 것 같습니다.
선악구조 속의 아담들은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서 스스로의 자원과 애씀과 열심과 노력으로 자신들의 몸을 활활 태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은 너희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헛 된 것이다 하십니다.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모든 인간이 자기의 구원을 얻어내기 위해 자기의 몸을 활활 태워요. 이것이 모든 인간들의 빚 갚음 행위들이죠. 안 그러면 불안해서 죽지요. 그래서 그들은 율법의 행위로 자신들의 빚 갚음을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되어 있어요. 아니 인간은 그것밖에 할 수 없어요! 그것이 이 땅 위에 태어나는 인간들의 보편적인 속성입니다.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은 율법의 빚을 진자로 평생을 살게되요. 그래서 기부. 선행.선교로 인격의 도야로 자신의 빚을 갚아나가요. “이걸 다 갚으면 구원에 이르겠지”라는 막연한 추측을 갖고... 그리곤 그러한 모습들이 조금씩 눈에 보이게 성숙한 모습으로 발전이 되고 또 주위 사람들로부터 괜찮은 평가를 받게 되면 마치 채무자의 빚이 조금씩 탕감되어 가듯 좋아합니다. 이 빚을 지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이렇게 모든 인간들이 빚쟁이처럼 살아요. 그게 율법주의 세상입니다. 여기서는 끊임없는 섬김. 빚 갚기의 행위만 난무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빚을 갚으시겠다고 친히 내려 오셨어요. 모든 인간들이 빚을 갚겠다고 영심히 채무자의 삶을 살고 있는데 채권자인줄 알았던 그 신이 그 분에게 우리는(모든 인간은) 빚을 갚아 구원에 이르러야 한다고 그 채권자에게 열심히 빚을 갚고 있었는데 채권자가 내려오더니 내가 채무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빚을 갚아야지 “너희 들이 나에게 빚을 갚으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라고 했단 말입니다.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섬기러 왔다고 애기 했습니다.
그런데 왜 너희들이 나를 섬기는거니? “내가 너희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 나라야” 내가 너희들에게 빚을 갚는게 하나님 나라의 통치 방법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들이 열심히 일해서 나에게 빚을 갚음으로 말미암아 운영되고 통치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들에게 쏟아 부어주는 그런 나라가 하나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당신에게 구하라고 하세요! – “아이테오αἰτέωG154= 빚을 갚으세요라는 뜻입니다. 나에게 구하라? = “내가 채무자다”라는 것입니다.(내가 갚겠다는 뜻입니다.) 구하라 내가 갚으리라 했단 말입니다. 인간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당연 합니다. 우주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이 땅의 아담들은 피조물이 신에게 빚을 갚는 것이 마땅하고 올바른 신앙이고 행위라고 철썩 같이 믿고 행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들이 그런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분은 섬김의 대상. 두려움의 대상 그것 갚지 않으면 나에게 해꼬지를 할 수도 있는 그 런분- 모든 종교의 신이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신이 내려 오시더니 내가 너희에게 빚을 갚는 것이 진리거든 왜 너희가 나에게 빚을 갚으려고 그러니! 그것이 교만이다? 히브리스 – “너희들이 너희 자리를 모르고 너희 자리를 떠난거야”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스 = 교만 휘페렙하니아ὑπερηφανία/G5243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열심히 뭔가를 만들어서 받친다 해도 너희가 심지어 예수와 방불한 자처럼 성숙을 가지고 온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 것은 내가 받지 않는다” - 하나님이 대노(이 독사의 새끼들아) 하셨습니다.
당연히 그것이 무슨 말인지를 알아듣는 이가 없었습니다(이게 무슨 소리야?) 아담들의 속성은 그 신에게 빚을 갚고 섬기는 것 인데.. 하나님이 내려 오시더니 우리에게 빚을 갚는다네? – 은혜잖아요! 은혜를 이해할 수 있는 아담이 한 사람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 역사 속 아담들 중에 그 말의 뜻을 알아듣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오순절 이후부터 입니다. 오십부터 입니다. 희년이죠.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서 갚을 수 있는 채무변제 능력이 전혀 없는 자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아! 이것으로는 빚을 갚을 수가 없는 것이구나~)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약속하신 그 생명의 말씀을 받아먹고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주마하신 약속의 생명을 채권자들처럼 거져 받아먹기 시작했단 말이죠 “준다고 했으니 주세요” 하고 아이테오(=청구하다) 하니까 그 분이 주셨습니다. 진짜로 빚을 갚아 주셨단 말입니다. 그게 약속입니다. 내가 원하기도 전에 그 분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것을 나에게 주시면 그 분이 먼저 나의 빚을 갚은 것입니다. 그 분이 먼저 주신다고 했으니까!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양식 이었습니다. 그 양식을 잘 받아먹고 나니까 (진리의 말씀을 복음으로 받아먹고 나니까) 그 동안 자기가 갚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그 율법의 빚이 하나하나 탕감 되어 나가기 시작 했어요. 이것도 저것도 나에게 갚으라고 한 것이 아니였구나! 이 제사도 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아니였네. - 이렇게 하나 하나 탕감해 가기 시작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내가 갚아야 할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쏟아 부어 주시는 “당신의 그 약속 그 빚을 내가 받아야 살 수 있는 것이다” 라는 진정한 자유가 그들에게 퍼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이 롬8장12절에서 말하고 있는
(롬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영(말씀)으로써 육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말씀)의 의해 내 빚(율법)이 갚아지는 결과가 나타나겠지요?
“내가 이것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죽일지도 벌할지도 몰라?”하고 열심히 행했던 율법의 빚! 이것 진리의 말씀이 내게 들어오자, 어 아니네... “하나님이 나에게 그 걸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였구나! 하나 하나 알게되면? – 나중에는 완전히 탕감된걸 알게 될 것 입니다.- 그걸 용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일차적으로 내가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하는 내가 빚진 자 임을 알게 되고 (바울이 자신을 빚진자라고 했듯이) 내가 누군가에게 빚을 갚아 그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하는데 내가 빚을 갚아 탕감해 주어야 할 대상이 누구죠? “나” 입니다! “나” 자신인 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진리를 양식으로 갖게 되면 “나”가 제일 먼저 그 빚을 탕감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된 것입니다. 이 문장을 헬라어 원문으로 다시 직역을 하면 이렇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자유롭게 하는 용서가 일어나게 해주세요 우리 안에서 우리의 그 죄들을 다시, “우리의 그 죄들을 당신이 사하여(용서 하셔서) 우리 안에서 자유가 일어나게 해주세요”이런 말입니다. 그리고 역시 우리가 우리를 용서합니다.(kai로 연결되어 있음) 우리의 그 죄들을 이 문장을 아람어로 하면 “우리가 우리 죄를 용서 합니다” –어구가 완료시제로 구성 되어 있다. 아람어의 완료형은 동시적인 것을 가르치거든요? – 예수님이 아람어로 말씀 하셨을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그리로 가서 확인해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이 구절은 “이걸 먼저 할 테니까 저것 해주세요”라는 이런 순서적 청원이 아니라 앞의 것과 뒤에 것은 동시에 일어나는 일 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완료형으로 되어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빚을 갚으셔서 “나의 빚이 탕감이 되면 나는 나를 용서 할 수 있고 나의 죄에서도 완전히 자유롭게 풀려날 수 있다”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 여러분 자신을 용서 하셨나요? – 그것이 구원 받은 자의 현실 입니다.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게 되면 제일 먼저 용서를 해야 할 존재가 “나”란 말입니다. 그가 자유로워지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는 그 자유를 가지고 다른 이들에게 그 걸 흘려주어 그 용서를 그 들에게 전해 주는 것입니다. 마치 내가 그를 용서 하는 것처럼 성경에 그렇게 기록 되어 있습니다. 나는 단지 나를 용서한 그 말씀을 흘려 준 것 뿐인데 그러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을 용서하잖아요? 그러면 그 어디나 정말 하늘나라입니다. 늘 행복하고 기쁘고 그런 말이 아니라 – 그것은 미친 것이고 / - 그 자유로 사는 것이란 말이지요. 그 율법의 빚에서 풀려서 자유롭게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지옥으로 보낸다고 할지라도 거기서 그 자유로 산다니까요? 거기를 천국이라고 그럽니다. 유치하게 모든 시설이 완비되어 있는 그런 곳을 천국이라고 생각 한다면 여러분은 아직도 하나님 말고 재물을 섬기는 것일 뿐 인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물론 좋을 것입니다. -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좋음이 아닙니다. 상상 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늘을 텅 비워놓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런 하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보편적인 인간들이 이 율법의 빚을 갚기 위해서 일평생 그 짐을 지고 그 수고와 환란 속에 사는 빚쟁이들이라면... 성도는? 하나님의 그 빚 갚기의 섬김(아가페 사랑)하나님의 빚 갚기, 그 섬김,그 사랑에 의해서 자신의 빚을 탕감 받고 다른 말로 자신의 빚을 스스로 탕감해주고(자유롭게 풀려난다는 말씀입니다) “빚 갚아 주세요”하고 있는 이웃들에게 그것을 전해주어 또 빚진 자로서 내 빚을 탕감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채무자는 거룩한 채무자인 것이지요. 거룩한 빚진 자.
사도바울이 “너희들은 서로서로 빚지면서 살아” – 이상한 말을 한 것입니다.
(롬13:8-10) 8.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그런데 어떤 빚은 지라고 그러죠? 사랑의 빚이래요 그것도 빚은 빚이잖아요 )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그런데 너희들은 왜 율법으로 빚을 갚으려 하고 사랑의 빚은 아무런 관심이 없니? – 이런 말이죠!) 너희들은 율법의 행위로는 열심히 빚을 갚으려 하고 왜 사랑의 빚에는 관심이 없니? 모든 율법은 사랑으로 완성 된 것인데! 너희들이 사랑으로 서로 빚을 갚으면 그 율법은 너희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란 말인 것입니다. 9.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 산상수훈 아닙니까?)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모든 율법의 세목들은 바른 진리를 올바로 깨달아 흘려주라는 얘기였지! 그래서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언제 율법을 하나하나 지켜서 빚을 갚으라고 그랬어.” 만약에 “다른 이에게 너희들이 빚을 탕감해주는 말로 용서의 말로 전해주지 못하면 “너희들은 그 이웃에게 악을 행하는 것이야” 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이웃에게 어떻게 악을 행하니? 사랑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 서로 흘려 주는 것을 말하고 있죠. 서로서로 빚진 자를 사랑하는 것이죠. 빚진 자가 나쁜 것이 아니죠.- 성경에서 말하는 빚진 자는 서로가 서로의 율법의 빚을 탕감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성도란 말입니다. 서로서로 빚을 갚는 형국 – 그것이 진리 안에서의 교제라는 것이죠. - 코이노니아 (κοινωία/G2842교제) – 서로서로 빚진 자로 사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주어서 율법의 빚을 더욱 가중시키는 자들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것은 악을 행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진리이신 하나님을 진리의 말씀으로 올바로 깨달아서(- 그것이 하나님 사랑이죠) “하나님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라. – 그 사랑이신 하나님을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내가 잘 깨달아 알면 ” -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엉뚱하게 오해해서 그 분을 빚쟁이로(나에게 빚을 받아내는 채권자로) 만들어 버리면 그것은 열심히 섬겨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렇게도 분노하셨던 겁니다. 열심을 부려서 제사 드리고 열심을 부려서 율법 지켰던 그 바리새인들에게 대노 하셨지요. - 왜! 나를 모독해!
그렇게 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서 구하는 자들에게 잘 전달을 해주면 그것이 나에게 빚을 갚으세요 하는 자 들이니까! 내 빚을 갚는 일뿐만 아니라 그 들 자신의 율법의 빛도 갚아주는 서로서로 빚을 갚아주고 탕감해주는 그런 빚진 자 거룩한 빚진 자의 삶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빚 갚으심의 일인 그런 자기 계시 하나님이 자기를 계시 하신 것이 은혜를 우리에게 흘려주시는 것이고 그게 생명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게 빚 갚으심이 일인 진리의 수혈을 통해서 우리의 빚을 탕감 받고 하나님을 내가 탕감을 받는 즉시 나의 하나님은 나의 대해서 채무자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겠지요? -그게 내가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에게 약속을, 언약을 흘려주셨어요” – 깨달아 알았어요. 그것을 모르면 그분은 나에게 있어서 영원한 채무자인데 그런데 내가 받았어요. 해결이(탕감) 되었어요. 그 분은 더 이상 나에게 있어서 채무자가 아니고 하나님인 것이죠. 그 분은 사랑이란 말이예요. (그때부터) 그렇게 하나님을 채무자의 자리에서 해방 시켜드리며 우리 자신을 용서하고 그 용서의 말씀을 다른 이들에게 흘려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율법적 채무를 변제 받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도 다른 이들에게 또 거룩한 빚진 자가 되어서 빚을 갚는 사랑의 매게체로 살게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성도라고 한다
(마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ἀφίημι/G863압히에미/용서하다)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ἀφίημι/G863압히에미/용서하다)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우리가 우리 이웃의 죄를 자유롭게 형제의 죄를 풀어주지 못하게 되면 하늘의 아버지께서도 널 못 풀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빚 갚기에 의해서 진리의 말씀을 바꾸어서 용서를 받은 자는 그 용서가 무엇인지 다른 이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형제에게 자신을 용서하고 이웃을 용서할 수 있는(사랑할 수 있는) 그 런 말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율법으로 얽어 매는 말을 전해주는 자가 있다면 “그가 어찌 하나님의 빚 갚기 위한 은혜를 경험한자 이겠느냐” 이런 말이죠 “네 이웃이 해코지 한다고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너 용서 않한데, 그러니까 이를 악물고 용서해버리는 것” -하나님은 그런 것 원하는 것 아닙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있는 자들이 천국에 다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들은 평생 이를 갈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어떤 결론의 말씀인지 아시겠습니까? “너희들이 각각 중심에 형제들을 용서하지 못하면 천부께서도 너를 용서하지 않는다” – 이런 말씀인 것이다.
* 전체적 메세지가 흐려질 수 있습니다. 꼭!!! 전체말씀을 통한 귀한 시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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