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목사님

117 베레쉬트 엔,아르케

jaeim1028 2013. 11. 23. 13:14

 

 

서울서머나교회

 

 

117. “베레쉬트בּראשׂית”“엔 아르케 έν άρχή”....

- 로마서 강해(57). “ 예수의 표상인 아담”본문기록...

 

 

성경의 첫 단어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베레쉬트בּראשׂית’입니다.

이 ‘베레쉬트בּראשׂית’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시간의 시작, 혹은 어떤 장소의 처음’, ‘머리’를 가리키는 것인데,

성경은 현대 히브리 문법이 생겨나기 이전에 그 히브리 알파벳이 가진 원의로 조합된 단어들로

기록이 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전적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 단어들을 하나하나 파자해 보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는 지금의 현대 히브리어가 아니라 원 시나이어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고대 히브리어이기 때문에 현대 히브리어로만은 그 깊은 의미를 다 이해해 낼 수가 없습니다.

 

‘베레쉬트בּראשׂיתH7225’라는 단어를 파자해 보면,

자음 베잍(성전, 집)+레쉬ר(시작, 머리)+알렢א(하나님, 사람)+쉰(되새김, 분석)+요드י(편손)+타우ת(완성의 표)의

합성어입니다.

즉, 베레쉬트라는 것은

성전의 시작(머리)인 하나님을 잘 설명함으로 해서 시간 안의 존재들에게 손을 펴서 넘겨주는 완성의 표라는

의미를 그 안에 함의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소리로 읽어내면 ‘베레쉬트’(태초에)가 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성경이며 역사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과 천지라는 공간은

한마디로 하늘의 영원과 하늘의 성전, 그리고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한 ‘표, 모형’으로서의 한시적 현상계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게 성경의 첫 단어인 ‘베레쉬트’라는 한 단어 속에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성경의 첫 단어는

‘내가 지금부터 현상계의 것들로 하늘을 설명할 테니 잘 들어’라는 뜻입니다.

이 역사 안의 것들로 묵시의 것들을 설명하여 넘겨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베레쉬트’라는 단어를 헬라어로 바꾸면

‘엔ένG1722 아르케άρχήG746’인데 그 단어가 요한복음의 첫 단어입니다.

그 ‘엔 아르케’라는 헬라어의 첫 단어 ‘엔έν’이라는 전치사는 히브리어 불 분리 접두전치사 ‘베’를

그대로 가져와 헬라어로 옮긴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좀 전에 그 ‘베잍’이라는 히브리어 두 번째 단어가 ‘성전, 집’의 의미가 있다고 했지요?

그리고 "아르케άρχή"(시작)를 히브리어로 바꾸면 ‘레쉬트ראשׂיתH7225’(시작)인데,

레쉬트’의 어원은 ‘로쉬ראשׂH7218’(머리)입니다.

즉, ‘베잍’이라는 성전 안에 머리가 놓여 진 모습입니다.

그 성전 안에 머리가 놓여 진 것이 교회지요? 예수님께서 그러셨잖아요?

‘내가 머리 둘 곳이 없다’.

그건 예수님이 너무 가난해서 집이 없었다는 이야기나 의지할 대상이 없었다는 그런 말씀이 아니라

성전의 머리이신 예수가 들어갈 수 있는 참 성전이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이신 말씀이 성전 안에 들어가 머리로 존재하는 것이 교회잖아요?

그 교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의 그리스도가 되셨을 때 비로소 탄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에는 예수라는 머리를 둘 참 성전이 없는 게 맞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구약 성경의 첫 단어인 히브리어 ‘베레쉬트בּראשׂית’를 그대로 옮겨다가 헬라어로 표기를 한 것이

‘엔ένG1722 아르케άρχήG746’이고 그 둘의 의미를 종합해 볼 때,

성경 전체와 이 역사는 무한의 하나님께서 유한의 피조물에게 묵시를 설명해 주시는

(참 성전 안에 그리스도, 즉 성령이 머리로 들어가 하나로 연합이 되는 묵시 속 교회의 실체를 설명하는) 설명서인 것이며

역사 또한 그 말씀을 증거 하고 설명하는 도구요, 방법이요, 한시적 무대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단어들이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담이나 하와나 뱀이나 죄나 선악과나 생명나무 역사 속 예수 등은

모두 그 ‘베레쉬트’를 하기 위한 방법이요 도구가 맞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디아’라는 전치사 뒤에 그 모든 단어들을 소유격으로 써 넣은 것입니다.

그건 모두 실체가 아니라 모형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것, 실체가 설명되기 위해서는 땅의 것, 모형의 불가능함과 한계가 증명되고 증거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실체가 설명이 되고, 그 실체의 가치가 입증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아담안의 모든 인간이 죽는 것이고, 역사 속 예수가 죽는 것입니다. 죄도 죽고, 율법도 죽습니다.

다 사라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영광만 남습니다. 후자를 위해 전자가 수단과 방법과 도구로 사용되어,

그 설명을 다 마친 후 장렬한 최후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