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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 성경이 말하는 성령 충만은 무엇인가” ....

jaeim1028 2015. 5. 4. 16:13
139. “ 성경이 말하는 성령 충만은 무엇인가” .... - 그런기독교는 없습니다..성령충만(3) ...본문기록 성경이 말하는 성령 충만은 무엇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들이 무엇을 했으며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살펴보면 성령 충만이 무엇인지 금방 알게 될 것입니다. 몇 군데만 살펴보지요. (행4:8~12) 8 그 때에 베드로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장로 여러분, 9 우리가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과, 또 그가 누구의 힘으로 낫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 때문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성한 몸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하나님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 11 이 예수는 '너희, 집 짓는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은 돌이지만,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 입니다. 12 예수 밖에는, 다른 어떤 이에게서도 구원은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을 이름은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들 가운데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는 달리 없습니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해서 무엇을 합니까? 구원에 대해 설명하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전합니다. 사도행전의 다른 곳으로 가보지요. (행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역시 이곳에서도 성령 충만한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행6:3~4)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일곱 집사들의 자격 조건이 ‘성령 충만‘입니다. (행7:54~56) 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고 그것을 증거 하였습니다. (행9:17~18) 17 그래서 아나니아가 떠나서,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손을 얹고 "사울 형제, 형제가 오는 도중에 형제에게 나타나신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형제가 시력을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니, 18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그는 시력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서 세례를 받고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세례를 받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행13:8~11) 8 그런데 이름을 엘루마라고 번역해서 부르기도 하는 그 마법사가, 그들에게 훼방을 놓아서, 총독으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9 그래서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은 성령이 충만해서, 마법사를 노려보고 말하였다. 10 "너, 속임수와 악행으로 가득 찬 악마의 자식아, 모든 정의의 원수야, 너는 주님의 바른길을 굽게 하는 일을 그치지 못하겠느냐? 여기서도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당당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행11:24)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초대 교회의 지도자였던 바나바도 성령이 충만하여 그의 일을 수행 할 수 있었습니다. (행13:49-52) 49 이렇게 해서 주의 말씀이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50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읍의 지도층 인사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였고, 그들을 그 지방에서 내쫓았다. 51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다.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를 비롯해서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경우를 주목하여 보세요. 개인이나 무리나 할 것 없이 성령이 충만하니 무엇을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있었던 120명의 제자들이 그러했고 산헤드린 앞에서 베드로가 그러했고 바울과 바나바, 스데반 등 모든 제자들이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의 제일 되고 가장 특징적인 표지는,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고 삶으로 예수를 전한다는 것입니다. 위의 구절에 등장하는 어느 누구도 성령이 충만하여 기적을 경험한다든지, 방언을 했다든지, 자기 체험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오직 예수만을 이야기합니다. (요16:12-14) 12 아직도,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지금은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일러주실 것이요,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또 그는 나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그가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알게 하시고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셔서 성령 충만을 받은 자들은 반드시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으로 입으로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자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성령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예수로부터 받은 선물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자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 입으로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딤전6:3-5)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가르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말씀과 경건에 부합되는 교훈을 따르지 않으면, 4 그는 교만해져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요, 병이 들어서 논쟁과 말다툼을 일삼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데서, 시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의심이 생깁니다. 5 그리고 마음이 썩고 진리를 잃어서, 경건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 사이에 끊임없는 알력이 생깁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그런 사람들과는 상종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가 더 있음).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라는 목회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말씀을 바르게 전하라고 목회 서신을 보냈습니다. 디모데서와 디도서지요. 거기에서 바르게 가르치라는 ““교훈””이라는 말을 열네 번을 쓰는데 3절의 ““다른 교훈””이라고 번역된 말은 헬라어 ““헤테로 디다스 칼레오””입니다. * 헬라어 ““헤테로 디다스 칼레오ἑτεροδιδασκαλέωG2085””입니다. -- 다르게 가르치다,다른 교리를 가르치다. 헤테로스ἕτεροςG2087:다른+디다스칼로스διδάσκαλοςG1320;교사,선생에서 유래 그 뜻은 false doctrine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교리를 모르고 여러분은 절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올바로 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이라 하나요? 왜 베뢰아 파를 이단이라 합니까? 왜 문선명씨의 통일교를 이단이라 하나요? 그들도 같은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을 이단이라 합니까? 교리가 다르기 때문에 이단이라 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교리를 알지 못하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인지를 아시겠어요? 체험과 경험으로 믿다보면 언젠가 자기가 믿는 게 하나님인지 부처님인지 알라인지 헛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이렇게 처음부터 교리 부분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르게 알아야 바르게 전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녹취 정리 추가)……… 신앙은 지정의로 받아야 합니다 머리로 이해를 해야합니다. 성경을 근거로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에게 축복권 저주권 이런거 없습니다.주어진 몫이 다른 것입니다. 목사는 말씀을 공부해서 전하는 것입니다 예배당안에서 어느 것 하나 중하고 경한게 없습니다. 모두 똑같습니다. 교리를 충실히 공부하고 말씀을 보십시요 우리가 믿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아셔야 합니다. ……………………………… (갈1:6-8) 6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불러 주신 그분에게서, 여러분이 그렇게도 빨리 떠나 다른 복음으로 넘어가는 데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실제로 다른 복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몇몇 사람이 여러분을 교란시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8 그러나 우리들이나, 또는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축복받고 잘 먹고 잘살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성령이 오셔서 걸린 병 다 낳게 해 주십니다. 예수 믿으면 내게 능력이 임해서 내가 손을 언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됩니다. 성경에 없는 그런 애기들 체험적인 애기들 자기가 경험한 애기들 이러한 것을 복음이라고 전하는 이들은 성경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라고 합니다. 만약에 성경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도를 한다면 여러분은 저주 받을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교 나가서 무당종교 퍼트리지 말고 알고 나가자는 말입니다. 전도를 하더라도 알고 하셔야 합니다. 교리를 모르고 엉뚱한 복음, 다른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성경을, 바른 교훈을 공부해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올바른 예수를, 올바른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자를 우리는 성령이 충만한 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탄과 대적하여 싸울 때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무엇이라 했나요? 바로 말씀 아닙니까? (엡6:17) 그리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칼,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십시오. 성령이 오시면 우리는 그 말씀을 이해하게 되며 말씀이 궁금하게 됩니다. 그 말씀이 우리안에 충만히 흘러 넘치지 않으면 세상과 싸워 이길 수도 없고 무너지고 맙니다. 예수가 오셨는데 이땅에서 아무도 못알아 "R는데 귀신은 알아"R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과 하늘에서 함께 있었기 때문에 말씀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우리도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돠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성령 충만은 이렇게 올바른 교리의 숙지에서 오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성령 충만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으로 전한다는 것은 오늘 본문 에베소서 5장을 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게 쓴 편지에서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자녀들아 부모에게 순종하라. 부모들아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마라. 종들아상전에게 순종하라. 상전들아 종들에게 공갈치지 마라.'고 성령 충만의 내용을 열거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이야기하면서 무엇을 제시하고 있습니까? 바로 일상생활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들은 우리의 삶속에서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설명하셨듯이 예수님이 하나님이 나를 보낸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그러면 우리의 삶속에서 예수가 드러나야 되지 않습니까 이 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성령 충만한 자에게서 나오게 되는 성품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이러한 영적인 그리스도인의 성품이 나오고 있으신가요?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러한 용서와 사랑과 인내와 자비가 나오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남을 멸시하고 죽이고 있습니까? 이 에베소서의 성령 충만의 내용은 갈라디아서의 성령의 열매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갈5:22-23)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23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할 법은 없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연합시키시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래서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을 향해 가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라는 줄기에 붙어있는 자들은 당연히 열매가 맺히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성경 공부나 설교와 같은 학습이 방법으로 개입되는 것이고 그러한 학습과 훈련 속에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배우고 익히게 되는 것이며 그러한 성도의 모습을 우리는 성령 충만한 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