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성경은 모두 66권으로 ”....
150. “성경은 모두 66권으로 ”.... (관련강해말씀)
- 그런기독교는 없습니다.(05).성경강해...
- 그런기독교는 없습니다.(16).구약과 신약...
- 에베소서 강해.(25) 역사에 흐르는 죄...
- 에베소서 44강.너희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게 하라(Ⅲ) ...본문기록
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복음에 관해서만 기록이 되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이 제일 어려워하시고 잘 못 읽으시는 부분이
이 시가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시가서도 단순한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권고나 책망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백성들의 구원 즉, 복음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 드리고 다음 절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성경은 모두 66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 39권 신약27권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중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우리가 토라(모세오경)이라고 부릅니다.
모세가 애굽을 나온 후 광야에서 쓰기 시작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 상, 열왕기 하,
역대 상, 역대 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여기까지를 역사서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전쟁을 치르고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고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하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서를 ‘시가서’라고 합니다.
혹은 지혜 문학이라고 도 부릅니다.
그리고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서를 대 선지 서라고 합니다.
다른 선지서보다 책의 양이 많아서 대 선지 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16명의 선지자가 나오는데 그 중 그 네 사람이 쓴 책을 대 선지 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이렇게 12선지자의 선지 서를 소선지 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400년 암흑기를 거쳐 (- 에베소서 강해.(25) 역사에 흐르는 죄...)
예수님께서 오시고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4복음서가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 중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은 내용이 많이 겹쳐있고 기록한 관점이 같다고 해서
공관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 중 마가복음이 제일 먼저 기록이 되었고
그 마가복음에는 없고 마태복음, 누가 복음에만 있는 자료를 우리가 Q자료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마가복음의 뼈대 위에다 Q자료의 내용과 마태의 견해를 보탠 것이 마태복음이고
역시 마가복음의 뼈대 위에다 Q자료를 얹고 그 위에 누가의 견해를 보탠 것이 누가 복음입니다.
요한 복음은 그 구조가 전혀 다릅니다.
요한복음은 대단히 헬라 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복음서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 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후서, 디모데 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예수님의 동생), 베드로 전후서,
요한 1,2,3서 그리고 유다서(예수님의 동생), 요한 계시록으로66권이 마무리됩니다.
이 전체가 한 가지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한 분의 저자이신 성령께서 쓰신 한 권의 책입니다. 어떤 주제입니까?
우리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구속의 역사가 기록이 된 책입니다.
그 구원이 누구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까?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그러니까 성경은 전체가 그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창2:8-10)
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여기에서 이리로 가는 것입니다.
(계22:1-5)
1.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3.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5.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그래서 성경 신학에는 ““종말은 태초의 완성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태초가 목적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이 목적은 처음부터 요한계시록 22장의 그 새 하늘과 새 땅이었습니다.
어떻게 그 불가능하고 패역한 인간들을 하나님의 속성이 하나도 손상됨이 없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만들어 가시는가를 하나님의 교회에게 설명하시는 책이 바로 성경책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시가서도 그 관점으로 해석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 요한계시록 38.누구와의 전쟁인가 본문기록...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싸워야 할 싸움은 믿지 않는 자들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전투를 한다는 것은 교회 봉사 열심히 하고, 선교 열심히 하고, 또 훌륭한 사람 되어서
예수 안 믿는 사람들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하는 그런 싸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이미 유다 안에 마귀가 들어갔다고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마귀의 발을 닦아주십니다. 그게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절대 세상보다 더 잘 되어서 세상 사람을 내 발 밑에 깔고 ‘승리의 찬가’를 부르는 싸움을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와 같은 거룩한 자로 만들어지는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수1:2-9)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모세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노예 출신들인 오합지졸 이스라엘 백성들과 철기로 된 무기와 철 병거를 가진 가나안과의 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애굽은 지리학상 성이 필요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에 와서야 성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막강한 성을 공략할 아무런 대책이 없었습니다.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은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내가 영원히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니까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고 하시면서 전쟁 준비를
시키십니다. 어떻게 전쟁 준비를 시키십니까?
‘율법을 지키고 율법 책을 묵상하라’고 하십니다. ‘군사를 훈련시키고 군량미를 비축하고 무기를 만들어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율법을 지키고 율법 책을 묵상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율법은 ‘토라’입니다. 토라는 단순히 율법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모세오경을 가리켜서도 토라라고 합니다.
지금 여호수아서에서 토라를 지키고 토라를 묵상하라고 하는 것은
그 앞의 성경인 ‘모세 오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다른 말로 여호수아서 앞의 모든 성경을 묵상하고 지켜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쟁은 그것입니다. 대적을 박살내기 위해 실력과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의 발을 씻길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에 따라 살도록 힘써 행하는 전쟁입니다.
우리의 대적은 정말 강한 존재입니다.
가나안의 거인들, 철 병거를 가진 군사들처럼 강한 존재입니다. 성벽 위로 마차 두 대가 동시에 달릴 수 있는
정도의 철옹성 같은 성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그 앞에서면 마치 메뚜기 같을 정도로 우리의 대적은 강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대적은 하나님이 맡으십니다.
왜 여리고 성에 망치질 한번 못하게 하십니까? 왜 수십만의 미디안 군사 앞에 모여 선 삼만 이천 명의 이스라엘 군사들을
다 흩으시고 기드온과 삼백 명만 남기십니까? 그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전쟁을 통해서 무엇을 하라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고 우리가 누구인지 알며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게 되는 거룩한 자로 지어져 가는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일곱 재앙들은 전부 그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결국 승리하실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치시는 하나님의 전쟁을 보고 배우면서 실제로 체험하면서
우리는 한 발 한발 성숙하게 지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에서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 어디입니까? 가나안이지요?
그런데 왜 안식의 상징인, 하나님 나라의 상징인 가나안에 계속해서 전쟁이 있습니까?
가나안 땅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니까 당연히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전쟁을 통해서 조금 씩 조금씩 얻어가게 만드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구원과 안식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땅은 이스라엘에게 이미 주어졌어요. 그런데 전쟁을 통해서 갖게 만드세요.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그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점점 확실하게 알아가게 되고 그 분의 자녀로서의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천국을 조금 씩 조금씩 경험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 나에게 주어진 천국의 안식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를 비롯한 수많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그러한 천국의 안식을 이 땅에서 직접 체험하고 가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던 사람들입니다.
리차드 백스터 같은 사람은 ‘당신들의 삶 속에 거룩을 향한 싸움이 없다면 당신들은 다 가짜다’라고
소리 높여 외치셨습니다.(리차드 백스터의 ‘회심’중에서)
그 분들은 그러한 전쟁을 열심히 치러 내신 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더욱더 많이 깊이 맛보고 가신 것입니다.
이 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쟁을 겪어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여러분, 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하나도 기쁘지 않고 감격스럽지도 않고 평안이 없는지 아세요?
홍해를 건너긴 건넜는데 자기 안에 있는 대적들과의 싸움을 하지 않고 매일 그 적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가나안은 우리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을 받은 자들은 반드시 싸우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히4:8-13)
8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뒤에, 다른 날이 있을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9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하는 것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10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마치고 쉬신 것과 같이, 그도 자기 일을 마치고
쉬는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을 씁시다. 아무도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양날칼보다도 날카로워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 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향을 가려 냅니다.
13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고, 모든 것이 그의 눈 앞에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 놓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이미 안식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미 안식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 속에서 안식을 향한 싸움을 반드시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써야 합니다. 힘써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한 전투를 매일 매일 치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평면적인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역동적입니다. 다이나믹이 있습니다.
구원은 역사성이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한번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신분적이며 운명적이며 영적인 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존은 지금 구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일곱 재앙은 이렇게 구원을 받아 가는, 거룩해져 가는,
성숙을 위해 열심히 전투를 해야 하는 우리의 신앙 여정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고 초대 교회 때
그 엄청난 박해 속에서 이 일곱 재앙의 이야기를 읽고 가슴 벅차하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감격이 오늘 동일하게
이곳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임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