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두려움(프호보스πόβος), 피차 복종하라(프로스 람바노προσλαμβάνω
158.두려움(프호보스πόβος), 피차 복종하라(프로스 람바노προσλαμβάνω)
- 에베소서 73. 피차 복종하는 성령 충만한 자들 ..본문기록
(엡5:1-14)
5:1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5: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주신 것같이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5:3 음행이나 모든 더러운 행위나 탐욕은 그 이름조차도 여러분의 입에 담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성도에게 합당한 것입니다.
5:4 더러운 말이나 어리석은 말 또는 상스러운 농담은 여러분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오히려 여러분은 감사에 찬말을 하십시오
5:5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 두십시오
음행하는 자나 행실이 더러운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는 우상숭배자여서 그리스도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속받을 몫이 없습니다.
5:6 여러분은 헛된 말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이런 일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자식들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5:7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런 사람들과 짝하지 마십시오
5:8 여러분은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 안에서 빛입니다.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5:9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입니다.
5:10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십시오
5:11 여러분은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끼어 들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폭로하십시오
5:12 그들이 은밀히 하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입니다
5:13 빛으로 말미암아 폭로되는 모든 것은 드러나게 됩니다
5:14 드러나는 것은 다 빛입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사람아 일어나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환희 비추실 것이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피차 복종하라””는 명령은 술 취함과 대조,““프로스 람바노προσλαμβάνωG4355”
(엡5:15-33)
5:15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살피십시오.
지혜롭지 못한 사람처럼 살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5:16 세월을 아끼십시오. 때가 악합니다.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
5:18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방탕이 따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여러분의 가슴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십시오.
5:20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5:21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5:22 아내 된 이 여러분, 남편에게 하기를 주님께 순종하듯 하십시오.
5:23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몸의 구주이십니다.
5:24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5:25 남편 된 이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심 같이 하십시오.
5:26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며,
5:27 티나 주름이나 또 그와 같은 것들이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교회를 자기 앞에 내세우시려는 것이며,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5:28 이와 같이, 남편도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5:29 자기 육신을 미워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 육신을 먹여 살리고 돌보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그렇게 하시듯이 합니다.
5:30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입니다.
5:31 2)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창 2:24)
5:32 이 비밀은 큽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5:33 그러므로 여러분도 각각 자기 아내를 자기 몸 같이 사랑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중하십시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나와야 하는 ““예배자의 삶””에 관해
공부를 했습니다. 한 주간동안 여러분의 삶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삶을 살아보셨습니까?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화목제에 담겨 있는 예배의 정신과 원리를 기억하시면서
순간순간을 진지하게 보내셨나요?
이번 주에도 역시 그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에 종속되어 있는 21절 이후를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공부하고 계신 5장 후반부의 구조를 잘 기억하시고 계셔야 5장 전체의 이해가 용이합니다.
지금 우리가 몇 주간에 걸쳐서 공부하고 있는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삶은 전부 18절의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에 종속되어 있는 분사 구들입니다.
거기에 종속되어 있는 분사는 전부 5개입니다.
““서로 화답하며, 노래하며 찬송하며, 감사하며””
그리고 오늘 우리가 집중적으로 공부할 ““복종하라”” 이렇게 다섯 개입니다.
그러니까 21절에 나오는 ““피차 복종하는 삶””도 역시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살아내야 하는 삶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피차 복종하는 삶을, 술 취함과 대조하여 설명하고 있을까요?
“너희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그리고 그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들의 삶의 내용에 이 피차 복종하는 삶이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피차 복종하라””는 명령은 술 취함과 대조가 되고 있는 것이지요.
왜 이 둘이 대조가 되어 있을까요? 술을 마셔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사람이 술이 취하게 되면 절대 할 수 없는 것이 ““복종””입니다.
사람은 술이 취하게 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자신 있는 사람이 됩니다. 만용이 생깁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자기의 말을 들어야 하고 자기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게 술 취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술 취함이 ““복종””과 대조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술 취함은 단순히 ““술을 많이 마신 상태””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요?
‘여전히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사는 허망한 세상사람 일반’을 상징하는 단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어디서든 강한 척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정 반대인 “복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극명한 대조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 우리 개인으로 이 땅을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그런 책임과 의무 속으로 들어가게 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시키시는 것을 예수 안에서 피차 행해야 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피차 복종하라””는 말은 ““무조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어라””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의 뜻을 따라 한 목표 지점을 향해 그 목표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자신의 주장을 버리고 서로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살라는 말입니다.
부대 연병장에 연대장을 필두로 연대 병력이 집결해 있는 것을 머릿속에 그려보세요.
그 연대 병력은 그 연대장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 연대 병력 전체가 안전하게 전쟁을 수행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각자가 개별적으로 행동을 하게 되면 그 병력은 오합지졸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오합지졸은 어떤 목표도 달성할 수 없게 되며 그 개개(箇箇)인 병사들도 대적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강한 부대는 지휘자의 명령에 따라 피차 서로를 위해 헌신하게 될 때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교회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술 취한 사람들처럼 자기 자랑을 위해서 이기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나를 복종시키는 삶을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힘을 사용하지 않고 자랑할 것이 있음에도
다른 이들의 사기를 위해 조용히 감추는 보다 큰 인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바로 그렇게 살다 가셨습니다.
(빌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다듬어져 가는
그 신앙의 여정을 통해 다른 이들이 함께 복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창12:1-3)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우리는 이렇게 나를 통해 남이 유익을 얻게끔 존재하게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까지 자랑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우리 힘으로 얻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열심히 공부하셔서 예수님을 알아내신 것입니까?
우리의 두뇌, 재능 이런 것들을 전부 우리가 갈고 닦아서 만들어 놓은 것인가요?
믿음은 누가 주시는 겁니까?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모든 것은 바로 그 믿음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도대체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고전4:7)
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우리는 나를 자랑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를 죽여 다른 이들을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그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로 결정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자기를 비우는 ““복종””의 삶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인 것입니다.
(벧전5:1-3)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권고하는 말입니다만 이 권고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까?
첫째 하나님의 양 무리들을 섬기되 억지로 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라
둘째 자기의 이익을 취하려고 하지 말고 즐거운 뜻으로 섬기는 자가 되라
셋째 주장하고 다스리려 하지 말고 본이 되어라입니다.
그러니까 술 취함이 자기주장, 자기 과시, 자기 우월감의 증명이 그 핵심이라면
성령 충만은 그와 꼭 반대로 자기를 낮추며 양보하며 기다리며 섬기는 삶인 것입니다.
(롬15:5-7)
5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7절에 있는 ““너희도 서로 받으라.””에서 ““받으라””
““프로스 람바노προσλαμβάνωG4355””는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우정과 친절과 사랑을 주고받는 것””을 말합니다.
(사전참조) 프로스πρόςG4314(~을 향해)+람바노λαμβάνωG2983(취하다)
:취하다,(음식을)사용하다,(옆으로)인도하다,(우정,친절을)용납하다,받다...
심지어 우리는 좋은 일을 할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빌2:1-4)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뭐할 때? 좋은 일 할 때)
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우리는 좋은 일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술 취한 사람처럼 자기 과시, 자기 우월감의 증명으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복종””의 삶이 아닌 것입니다.
늘 자기를 감추고 겸손하게,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모든 언행을 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당신 자신을=남)(여김=함께 취한다)
제가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아볼로입니다. 여러분, 아볼로를 아세요?
아볼로는 어떤 면에 있어서 바울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사람입니다.
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는 알렉산더가 직접 세운 도시입니다.
-(사전참조)알렉산더[Alexander]
[인명] 마케도니아의 왕(BC 356~BC 323, 재위 BC 336~BC 323).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으며, 그 정복지에 다수의 도시를 건설하여
동서 교통과 경제 발전에 기여하였고,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하였다.
이 알렉산드리아는 로마 다음으로 큰 도시였습니다.
로마와 그리스, 소아시아와 팔레스타인, 그리고 북부 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을 연결하는
대 로마 제국의 두 번째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그 도시는 문화와 문명이 다른 도시에 비해 엄청나게 발전해 있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을 이어받은 네오 플라토니즘(Neo-platonism)이 꽃을 피웠고
-사전참조:[철학] 플라톤의 철학을 새롭게 계승하여 2~6세기에 유럽에 흥성하였던 그리스 철학의 한 학파.
플라톤 철학에 동방 유태 사상을 절충하여 성립된 것으로, 신비적 직관과 범신론적 일원론을 주장하였다.
플로티노스(Plotinos)가 창시하였으며 후에 독일의 관념론에 영향을 주었다.
유의어 신플라톤주의 (新Platon主義) , 신플라톤학파 (新Platon學派)
여러분이 잘 아시는 현대 과학과 수학의 중요한 뿌리들이 이 도시에서 탄생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열심히 사용하고 있는
유클리트 기하학의 유클리트[Euclid]가 바로 이 알렉산드리아 출신이고
유명한 초대 교부 오리겐이라든가 아타나시우스가 여기 출신입니다.
-(사전참조)오리게네스(Ὀριγενες, 185년 경 - 254년 경) 또는 오리겐(Origen)은 알렉산드리아파를 대표하는 기독교의 교부이다.
매우 독창적인 신학 체계를 세웠기 때문에 이단과 논쟁하였고 교회와도 마찰을 일으켰다. 그는 금욕주의에 따라 스스로 고환을 자른 것으로
유명하다.
-(사전참조)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그리스어: Αθανάσιος, 293년?~373년 3월 2일)는 4세기에 활동했던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이다. 아타나시오, 아타나시오스라고도 불린다.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성공회로부터 성인으로 존경받고 있으며,
개신교로부터는 위대한 교회의 신학자요 지도자로 여겨지고 있다. 325년 기독교 최초의 세계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부와 성자의
동일한 본질을 말한 그의 주장을 인정받아 정통 기독교 신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대표 저서로 <부활전 서한>이 있다
-27권 신약성서의 확립[편집]
아타나시우스는 오늘날까지도 거의 모든 기독교에서 신약성서로 쓰이는 27권 신약성서 체제의 목록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그가 모든 박해와 망명에서 벗어나서 알렉산드리아 교구의 주교직에 복귀한 직후인 367년 부활절에 그의 교구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는데 그 때까지는 신약성서로 정해진 성서가 없었고 수많은 복음서와 바울로를 비롯한 사도들의 편지가
교우들에게 성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음은 아타나시우스의 역사적인 367년 부활절에 쓴 서신의 일부이다.
…많은 사람들이 외경적이라고 규정 지을 수 있는 책들을 가지고 와서 근사하게 장난질을 쳐서 하느님의 영감을 받는 성서와 혼동시키고
있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들에게 하느님의 것으로 고백되고 우리들에게 전승되어 온 정경(the cannon)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책들의
목록을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1]
그가 만든 27권 목록은 383년 당시 교황 다마소 1세의 주도로 로마 공의회에서 논란이 없었던것은 아니지만 신약성서의 정경으로 인용되었고,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받아들여져 공포되었다. 이후로도 아타나시우스 주교가 주장한
신약성서 27권의 목록은 그의 주장대로 신약성서의 정경으로 확립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그렇게 알렉산드리아는 세계문화와 문명과 사상과 철학과 정신에 있어서 가장 앞선 도시였습니다.
- (사전참조)알렉산드리아 [Alexandria]
이집트 북부에 있는 이 나라 제일의 무역항. 기원전 332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건설하였고
오랫동안 고대 이집트의 수도였다. 동부 지중해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려 왔다.
면화를 주로 수출하였으며 시멘트, 자동차, 기계 공업 따위가 발달하였다.
아볼로가 바로 그 알렉산드리아 출신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그 아볼로가 학문에 능한 자라고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똑똑한 아볼로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도움으로 복음을 확실하게 정립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파, 예수파, 게바파와 더불어 아볼로파가 생겼을 정도입니다.
바울도 당시 아볼로가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고전3:6)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리고 자기가 세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아볼로파와 바울파로 갈라져서
서로 시기하고 다툴 정도로 아볼로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고전3:3-5)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입니다이만하면 질투가 날 만도 하지요?
게다가 바울은 언변과 학식이 뛰어났던 아볼로에 비해 참 설교를 못하던 사람 아니었습니까?
(고후11:6)
6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고린도 교회 신자들도 바울이 설교는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인정했습니다.
(고후10:10)
10 "바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차지만, 직접 대할 때에는, 그는 약하고, 말주변도 별것이 아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설교를 듣던 유두고가 졸다가 삼층에서 떨어졌겠습니까?
그런데 아볼로와 바울은 성령 충만한 분들이었습니다.
아볼로는 그런 뛰어난 학식과 언변과 성경 지식을 갖고 있었음에도 늘 바울 뒤로 숨습니다.
(고전16:12)
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저더러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되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바울에게 아볼로를 보내달라고 청했습니다.
바울은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아볼로에게 그들에게 가라고 많이 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자신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교인들이 혼선을 빚거나 바울의 이름에
어떤 누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거절을 합니다.
““갈 뜻이 일절 없다””고 했답니다. 이게 바로 피차 복종하는 삶인 것입니다.
나의 자랑과 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 나를 숨기는 사람들,
정말 멋진 모습 아닙니까?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4:6-7)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우리에게 배우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와 아볼로를 보고 배워서 서로 교만하지 말고 투기하지 말고 섬기는 삶을 살아라.””
이게 바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 21절 말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피차 복종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동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엡5:21)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우리가 피차 복종하는 겸손의 삶을 살 수 있는 동기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경외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경외””라는 말““ 프호보스πόβοςG5401””는 ““두려움””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그 분이 시키신 것을 두려운 마음으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5:9-10)
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두려운 말씀입니다.
(고후7:1)
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참고 고후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어떤 명령을 하고 가셨는지 몇 군데만 보고 가지요.
(마20:20-28)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뭘 해달라는 것입니까? 자기 아들들을 과시하고 싶은 거지요? 이게 바로 술 취함으로 대표되는 행위입니다.)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 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 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분히 여겼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자기들도 그걸 원했는데 누가 먼저 선수를 쳐서 화가 났다는 말입니다)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너희들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어라”” 하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우리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자기를 증명하고 자기 과시를 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기 때문에 그 말씀에 따르는 것입니다.
(요13:1-17)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12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 보다 크지 못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너희가 진짜 복을 받고 싶으냐? 그럼 피차 발을 닦아주어라”
당시에는 노예만이 주인의 발을 닦았습니다. 그 일이 얼마나 천한 일이었는가 하면 노예 중에서도
히브리 노예는 발 닦는 것을 시키지 않고 개 취급도 안 했던 이방 노예들에게만 시켰을 정도입니다.
우리 더러 그 아래까지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을 하셨기에
우리는 피차 복종하는 자리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 분은 경외의 대상이시거든요.
(요13:34-35)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주신 유일한 계명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서로 복종하라 그래야 너희가 내 제자다””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명령하셨기에 우리는 주님이 자기 몸을 원수를 위해 주시면서 본을 보여 주신
그 사랑의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40일 금식 기도하고 매주 철야 기도하고 집 팔아서 헌금하고 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자기를 숨기고 겸손하게 피차 복종하는 삶””입니다.
성경에 40일 금식하라는 명령은 없어도 ““피차 복종하라””는 명령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절대 종교 행위로 여러분을 자랑하려고 하지 마세요.
(갈6:12-14)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 뿐이라
13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표준새번역)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밖에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서로 참아 주면서 서로 복종하며
다른 이를 나보다 낫게 여기는 삶, 그 삶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삶입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