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간음하지마라(나하프נאף)(‘우(ου)모이큐세이스(μοιχευσεις)’),
163.간음하지마라(나하프נאף)(‘우(ου)모이큐세이스(μοιχευσεις)’), 로고스(λόγος)와 레마(ῥημα)... -산상수훈
18.옛 성전에 머물러 있는 기독교 그대가 간음하는 여자이다. 본문기록... 마태목음( 5:27~32)
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제가 지난주에 이 간음의 이야기는 성전의 이야기 율법의 이야기라는 걸 잠시 언급해 드렸죠? 오늘은 본격적으로 이 간음의 이야기를 성전의 이야기와 접목을 시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간음하지 말라. 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우(ουG3756-절대부정)모이큐세이스(μοιχευσειςG3431)’ 라는 -μοιχεύω모이큐오;간음하다
그 어구를 히브리어로 바꾸어 보면 ‘로티니어푸(תנאף)’ 에요
. 구약의 십계명(출20:14)에 나온 이 말을 예수님께서 그대로 가져다가 헬라어로 바꾸시는 거예요.
이 단어의 기본 동사는 ‘나푸נאףH3808’ 인데 그 ‘나푸’ 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자음 ‘능(נ)알렉(א)페(ף)’ 로 구성이 되어 있어요
. 그 문자들의 각자의 의미는 아래(נ), 하나님(א), 입(ף)이에요.
아래에서 하나님의 입으로 전해는 말.
그러니까 곡해되어 전해지는 말. 아래 성전에서 통용되는 말 이런 뜻이거든요. 그게 간음이라는 거예요.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혼인을 파괴하다. 우상을 숭배하다. 간음하다. 가 맞아요.
그러나 그건 히브리어라는 문자가 생겨난 이후에 사람들이 합의하여 정의한 내용이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담아 주셨던 의미와는 사뭇 거리가 멀단 말이에요.
여러분이 잘 알아야 두셔야 할 것이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애굽을 나올 때가 애굽의 18 왕조 때였어요.
그때에는 애굽에도 문자가 없었고 히브리 사람들에게도 문자가 없었어요.
문자라는 게 없었어요. 말만 있었어요. 당시에 사용되는 문자라는 건 고작 해 봐야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써서 올려 드리는 거룩한 예식에서의 글뿐이었어요.
그것도 애굽에만 있었어요. 애굽 문자가 최초잖아요. 애굽에만 있었어요.
그건 일반인들이 사용하던 그런 언어가 아니었어요
. 일반인들에게서 통용되던 문자는 그로부터 한참 후인 페니키아 때에 생겼죠?
문자가. 페니키아 때에 사람들이 무역을 하기 시작했어요. 물물교환이 아니라
. 그때에 무역을 하기 위해 글자가 필요해서 그때 비로소 문자가 생겼단 말이에요.
사람들이 통용하는 문자는. 그러니까 모세가 이스라엘을 끌고 애굽에서 나올 때는 문자가 없었단 말이에요
. 언어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애굽 문자가 이집트 문자가 시나이 문자로 시나이 문자에서 페니키아 문자로
페니키아 문자에서 가나인 문자로 발전했다 그러죠? 그건 언어학자들이 연구해 놓은 거예요
. 히브리어는 그 한참 뒤에 생겨난 거예요. 그 어원을 따져 들어가 보면 이집트 문자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가 있다니까요.
그렇게 모세 당시에는 사람들이 신에게 문자를 올려드리는 제례용 문자가 전부였는데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갔더니 거꾸로 신이 인간에게 글을 써서 내려 준거예요. 이게 기독교인 거예요
. 그건 경천동지할만한 일이었어요.
당시 글이라는 건 신에게만 올려지는 거였는데 신이 글을 써서 인간에게 줬다니까요.
이 세상 모든 종교는 인간 측에서 신에게로 올라가는 거지만
기독교는 신이 인간에게로 내려오는 거예요.
인카네이션(incarnation 성육신) 모세는 왕족이었기 때문에 애굽의 글을 알았겠죠?
제례문자지만 하나님은 그 언어로 십계명을 주신 거란 말이에요. 글자가 그거 밖에 없었어요
. 히브리 언어는 아직 있지도 않았던 때이니까. 그런데 그건 사람 사이에서 통용될 수 없었던 문자라고 그랬잖아요
. 신전에서만 쓰이던 문자니까. 그러면 모세에게 그 글을 줬을 때 모세가 그걸 읽을 수 있다? 없다?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거예요. 아기가 엄마라는 말을 한 번 내 놓을 때까지 육천 번 이상을 들어야 된다고 그래요.
육천 번을 듣고 엄마라고 했을 때 그 아기가 그 엄마의 의미가 뭔지를 알아요? 몰라요. 모세는 그 글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사십일을 잡아놓고 가르쳐주신 거예요. 복음을 설명해 주신 거예요
. 그 위에서 모세하고 장기 두고 노신 거 아니에요. 뭘 사십일 동안이나 그걸 새기셨나? 뭐 이러는 거예요. 설명해 준 거예요.
사십일을 사십일은 우리의 인생 역사를 상징하는 숫자죠?
우리 이 역사, 인생동안에 하나님은 그 복음, 하늘의 비밀, ‘무스테리온μυστήριονG3466’을 설명하시는 거란 말이에요
. 그걸 모세가 자기가 아는 문자로 이제 기록을 했겠죠? 그죠?
그리고 그것이 나중에 히브리어로 기록이 된 거란 말이에요
. 그런데 당시에 히브리 언어는 자음만 있었고요. 띄어쓰기도 없었어요. 그걸 어떻게 읽어요. 못 읽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에게 읽으라고 준 게 아니다. 라는 뜻이에요.
인간이 인간의 눈으로 성경을 보다 보면 반드시 곡해를 하게 되요.
하늘의 비밀은 묵시는 이 역사, 인간에게 파악되지 않아요. 이해되어지는 게 아니라 그것이 여러분 안으로 뚫고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그걸 설명하려고 할 때 이게 내 안에는 있는데 인간의 언어로 또 다시 엉뚱하게 나오는 걸 왕왕 경험하는 거예요.
내 안에는 있는데 이게 내 안에 있는 말로 나오자마자 그건 또 간음하는 말이 되어버려요
. 그래서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 말씀 안에 은혜와 능력을 담아서 그것 자체가 능력이에요.
그걸 이해하고 내가 사유해서 능력화 시키는 게 아니라 말씀이라는 것 자체가 능력이라니까요.
은혜와 능력을 담아서 살려내는 힘으로 준 거지 우리가 읽고 해석해서 하나님께 뭔가 그 보답을 해라.
그에 상응하는 어떤 행위를 올려야 된다. 라는 그런 의미로 준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건 말만 번드르르하게 하지 말고 주둥이만 나불나불 거리지 말고 행동을 좀 해라. 이런 말이 아니라니까요.
히브리어 알파벳 한자 한자에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그걸, 그걸 통해서 성경을 읽는 것과 그걸 모르고 읽는 건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애초에 인간들의 언어로 읽고 이해하라고 준 것이 성경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라는 안경을 통하지 않고는 모든 성경이 로고스(λόγοςG3056)의 차원에만 머물러 있게 되요
. 여러분이 잘 아셔야 할 것이 헬라어의 로고스(λόγος)는 진리의 말씀, 그걸 가리키는 게 맞아요.
그래서 로고스 교회, 로고스 성경, 대학 많죠? 그죠? 그러나 그 로고스(λόγος) 자체는 진리를 담은 말일 뿐이에요.
진리를 가리키기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진리가 아닌 것. 이걸 로고스(λόγος)라고 그래요.
마치 빛이 어두움을 드러내러 왔다. 라는 그런 개념과 흡사한 거예요.
빛이 어두움을 드러내러 왔다는 건 빛에 의해 어두움이 설명된다는 뜻이죠?
그러면 이 빛의 실체는 뭐에요? 뭘로 보여야 되요? 이게? 어두움을 설명하려면 빛이. 어두움으로 나타나요
. 역사 속에서는요. 빛이 어두움을 드러내러 밝히러 왔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빛은 어두움을 내용으로 하여 우리에게 보여지게 된다니까요.
그게 빛이 어두움을 밝힌다는 뜻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이 역사 속의 빛은 어두움의 빛,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그런 이중성 그건 제가 나중에 다시 설명해 드릴 텐데.
아무튼 그러한 연유로 헬라어에서는 ‘레고(λέγωG3004-앞에 놓다,이야기하다)’ 로고스(λόγος)에서 나온 거죠.
‘레고(λέγω)’와 ‘그레오(ῥέωG4483-말하다) 레마(ῥημα)’를 달리 써요.
레마 선교회 이런 사람들 혹시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달라요. 트레스티아스 그 사람들 말하는 거예요.
그 말이 아니라 로고스는 그릇의 의미가 강하고 ‘그레오(ῥέω) 레마(ῥημα)’는 진리를 자체를 가리키는 거예요.
그러니까 로고스(λόγος)라는 건 레마(ῥημα)를 담은 그릇이에요.
그러니까 문자를 여러분이 이걸 진리인양 그대로 여러분이 해석하여 읽게 되면 로고스(λόγος)에 머무는 거고
그 안에 들어 있는 행간 진리를 알아야 여러분은 그거를 레마(ῥημα)로 읽는 거예요.
따라서 성도는 로고스(λόγος)를 읽거나 들으면서 그걸 레마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고
같은 로고스(λόγος)를 읽으면서도 그걸 그냥 표피적인 그릇인 덧 문자 이렇게 로고스(λόγος)로만 이해를 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에요.
대부분이 그런데 후자에요.
그래서 예수님을 말씀, 로고스(λόγος)라고 부르는 거예요.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 그 말씀이 이 땅에 내려왔다. 이게 다 로고스(λόγος)에요. 그 분은 레마(ῥημα)에요.
진리잖아요. 그분이. 그런데 눈과 귀가 열리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씀이신 예수님은 로고스(λόγος)로만 보여요
. 그릇으로만 보인다니까요. 표피밖에 못 봐요. 빛이신 그분이 어두움들에게는 어두움으로만 보여요. 그래서 죽여 버린 거예요
. 왜 어두움인 우리의 정체를 폭로시키느냐~ 는 거죠. 성도는 말씀을 예수를 그렇게 표피적으로는 봐서는 안 되는 거예요
. 성도는 말씀 안에서 예수라는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거란 말이에요.
차치하고 하나님께서 산 위에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은 한 마디로 예수였어요
. 열 가지 항목을 하나하나 잘 지켜서 하나님을 감동시켜 보라고 주신 아니란 말입니다
. 말씀은 그 어느 곳 그 어느 곳을 뒤져도 다 예수밖에 없어요. 따라서 십계명도 예수에요.
그 열 가지가 담고 있는 게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고 그랬잖아요. 그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그 연합의 현실, 그 한 몸의 현실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말씀이 이룰 것이다. 라는 언약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거예요.
그게 계명이고 모세 오경이고 성경 66권이란 말이에요. 그것이.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언약이라는 건,
위로 솟은 기둥으로 설명되기도 했어요. 그 기둥이라는 단어가 ‘스타우로스(σταυρός)’ 인데 그 단어를 십자가로 번역한 거예요. 그 십자가는 언약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기둥이에요. 열, 십자로 된 십자가라는 의미는 성경에 안 나와요.
기둥 ‘스타우로스(σταυρός)’ 십자가 언약이라는 말만 나온단 말입니다. *
스타우로스σταυρόςG4716;기둥,언약,십자가,자기부인,
그리스도의 속죄 ;히스테미ἵστημιG2476:서다,붙잡다...어간에서 유래 하나님의 언약이하나님을 머리로 한 한 몸으로서의
하늘 존재를 완성해 내실 것이다. 가 계명이에요.
그런데 인간들이 선악과를 입에 문 상태에서 선악 판단의 주체가 되어서 하나님이 주신 문자를 읽게 되면 반드시 그 내용을 곡해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인간의 눈으로 보고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하며 인간의 행위로 열매를 맺으려고 해요. 그게 율법이잖아요.
그래서 간음하다. ‘나하프נאףH5003’라는 단어가 아래에서 이해되어지는 하나님의 입, 즉 아래의 성전, 옛 성전 이렇게 표현되는 거예요
. 그게 간음이에요.
‘나하프נאףH5003’에요. 예수께서 옛 성전에 앉으셔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소재로 해서
그 여인을 향해 돌을 들었던 유대주의 모두를 간음한 자로 폭로해내신 것을 기억하시면 이해가 쉬우실 거예요.
하나님 말씀을 목숨 걸고 지키려했던 유대인들이 기실은 간음하는 자들이었다
. 라는 걸 폭로하신 거예요. 그게 간음이라는 거예요.
그게 옛 성전이잖아요. 율법이잖아요
. 그래서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온 현행범을 앞에 놓고 니들 중에 나는 이 여자와 다르다
. 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그랬던 거예요. 아무도 못 들었죠?
그 말은 뭐에요? 니들이 바로 간음하는 자들이다. 라고 하나님이 그냥 폭로시켜버린 거란 말이에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 문자 수준에서 이해를 했고 그 수준에서 행동에 옮겼기 때문에 그래요
. 그걸 간음이다. 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들의 손에 이웃을 살해할 돌이 들려 있었죠? 그게 뭘 의미하겠습니까?
간음이 곧 살인이라는 걸 간단한 그림으로 보여 준거예요.
간음하는 자들을 항상 이웃을 살해할 돌을 들고 있는 위험한 자들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따라서 성경이 살인하지 마. 라고 했을 때 그럼 이제 앞으로는 절대 사람 죽이지 말아야지. 라고 결단하는 게 곧 살인인 거예요
. 여러분이 이걸 잘 이해하셔야 되요. 말씀드렸다시피 성경의 명령은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선악 체계 속에서의 의무사항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예수로 읽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