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삶, 사랑의 삶

2013. 7. 8. 13:56김성수목사님

 

서울서머나교회

85.십자가의 삶,사랑의 삶.

- 창세기 강해말씀 ‘소수에서 다수로 전파되어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본문기록...

 

하나님 앞에서 용사로 네피림으로 유명한 자로 서고 싶어 하는 죄인들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며 자신들의 힘으로 행복과 만족에 이르려 다른 말로

하늘에 이르려 바벨탑을 쌓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저주의 심판으로 그들의 말을 혼잡케 하셨던 그 사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성령이 부어짐으로 말미암아 다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 인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 하나님의 교회는 이제 모두가 선지가가 되어 하나님의 뜻과 하늘의

비밀을 올바로 깨닫고 이해하게 되어 다른 이들에게 그 하늘의 비밀과 하나님의 뜻이 담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온전한 참 선지자는 단 한 분이셨습니다.다른 많은 선지자들은

부분적인 하늘의 비밀과 하나님에 관해 전해 듣고 전한 자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온전한

참 선지자는 당신이 하나님이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이셔서 성부 하나님의 뜻을 그 안에 모두 담고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히1:1-2)

1.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예수님이야말로 하늘의 모든 것을 담고 계셨던 참 선지자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그 아들에게 주어졌던 온전한 복음이 이제 우리 성도들에게 부분적이며 제한적이 아닌 온전한

것으로 다 들어와 버린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제한적이며 부분적인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고 외쳤던 선지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온전한 복음을 소유한 이들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경은 우리 교회를 가리켜 온전한 복음 그 자체이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요 향기요 사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편지요,향기요,사신이라는 말은 그것의 본체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그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이 땅에서 예수를 대표해서 사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후2: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후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고후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우리는 구약의 선지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그 분의 향기요,편지요,사신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신이라는 것은 그를 보내신 이의 이름으로 그를 보내신 이의 모든 권세를 부여받아,

그를 보내신 이의 의중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계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이렇게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교회에게

그대로 주어집니다.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성도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이 땅에서 소유하고 그 권세로 복음을 삶으로 입으로

흘려보내야 하는 선지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그 권세를 가지시고 이 땅에서 하신 일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지고 이 땅에서 열심히 십자가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십자가의 삶,다른 말로 사랑의 삶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갖고 해야 할 구체적인 일들을 몇 가지만 짚어보겠습니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를 보면 자명하게 드러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의 죄를 폭로하고 고소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선지자들의 복음 전파도 세상의 죄를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성령의 조명하심 밖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그 사실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 내가 죄인이냐고 되 묻지요?

미국의 유명한 작가였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바로 숨을 거두기 전에 크리스천이였던 이모가

‘헨리야 너는 죄인이야,죽기 전에 하나님과 화해라고 가야해.안 그러면 큰일 난다’라고 했더니

마지막 유언으로 남긴 말이 걸작입니다.

‘이모,내가 언제 하나님과 싸웠는데?’였습니다.그리고는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신들이 왕이 되겠다고 그 분의 품을 떠나온 죄인들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선지자들이 외쳤던 것이 회개의 촉구였습니다.‘죄인들아 회개하라’

 

세 번째로 선지자들이 전한 것이 앞으로 임할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선포 것이었습니다.

 

네 번째가 새 언약에 대한 약속,메시아의 필연성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메시아의 공로를 입지 않으면 절대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정죄의 화살을 날려야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어떻게 세상과 어우러져 어깨동무를 하고 살아갈 수 가 있겠습니까?

성도는 성령을 받는 순간 세상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그렇게 자신들을 정죄하는 성도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정죄하는 성도의 삶은 세상의 죄를 입으로만 지적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삶 자체가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삶이어야 한다는 말인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사랑하지 않는 모습으로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

어불성설인 것처럼 성도는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심으로 사랑을 하고 섬겨 주고

용서를 해 주는 모습으로 세상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지도 못하고

‘너희는 왜 하나님의 명령인 사랑을 하지 못하는가?’라고 정죄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따라서 성도는 세상을 정죄하고 회개를 촉구하면서 그들의 삶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이런 것임을 보여야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복음은 다른 이들에게 흘러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이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바보처럼 방주를 지었는데 하나님은 그러한 노아의 삶을 가리켜

세상을 정죄한 삶이라고 평가를 해 주십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의인들은 너 자신 말고 네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라는

명령을 열심히 순종하며 살아나갈 때 세상을 정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중요한 선지자들의 임무는 백성 편에서 하나님께 백성을 변호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선지자들은 세상의 죄 만을 지적하는 데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대언하는 데까지 헌신을 했습니다.

출애굽기 33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시내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가라 하시면서 당신은 함께 가시지 않겠다고 하셨을 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편에 서서‘하나님이 족속을 당신의 백성으로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청원(변호)을 합니다.

선지자들은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긍휼하심까지 헤아려 죄인들을 막아서서 하나님께 그들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는 자리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삶이 바로 성도의 위대한 삶입니다.사랑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하나님의 힘을 빌려 이 세상의 행복을 얻어내는 종교가 아닙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 행복하게 산다고 해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길어야

80년일 뿐입니다.

그 이후에는 영원이라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짧은 80년의 인생을 투자해서 영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 삶이 바로 사랑하며 섬기며 용서하며 십자가의 삶 천국의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로서의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여러분의 상황을 보시며 미안해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 모든 상황과 사건과 처지들이 다 우리를 성숙시키기 위한 도구 일 뿐 이니까요...

 

여러분은

하늘의 왕자,하늘의 공주들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맡겨진 어떠한 역활도 여러분을 부끄럽고 불쌍하게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가난한 역활,병자의 역활,못 배운자의 역활,못 생긴자의 역활,죽도록 고생만 하는 역활 다 괜찮습니다.

그런 것으로 기죽지도 마시고 가진 자들을 부러워하지도 마세요.

그거 다 잠시 하나님께서 맡기신 배역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힘깨나 가졌다고 교만 떨지도 마시고요.

당당해 지세요.

어깨를 펴십시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 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신부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진짜 우리의 신랑인 하나님 앞에 순결하고 단정한 신부로 서기 위한 단장을

이 땅에서 열심히 하다가 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 일에 힘을 씁시다.

사랑하십시오.

섬기세요.

용서하시고 인내하십시오.

그게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신부의 모습인 것입니다.

내 아내가 내 남편이

나만을 사랑해 주고 나만을 존경해 줄 것을 기대하지 마세요.

물론 서로 서로 사랑해 주며 존경해 주며 살아야 지요.

그러나 여전히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 인간의 사랑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 사랑 기대하다가 오히려 분란이 일어납니다.

'왜 나만 사랑해 주지 않는 거야?왜 나를 인정하고 존경해 주지 않는 거야?'가

분노가 되고 복수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해 주십시오.

그 진리 그 사랑을 마음으로 가졌다면서요...

기독교의 사랑은 항상 나의 손해와 나의 상해를 전제하는 것입니다.

내가 손해보고 내가 다쳐서 상대방의 유익을 보고 상대방이 안전해 지는 것을

기독교의 사랑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십자가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살기로 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날마다 지는 사람들입니다.

손해보세요.

내가 해를 입으세요.

그리고 상대방이 유익을 보고 상대방이 살아나게 하십시오.

그게 그리스도인입니다.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하세요.

오래 참고 인내하면서 그 사랑을 하세요.

괜히 '내가 이렇게 까지 잘 해 주는데 자기 나 죽으면 당신도 따라 죽을 거야?'

이런 거 기대하지 마세요.

자기를 비워서 상대방을 살리는 하늘의 삶,

하늘의 사랑을 하는 이들이 바로 이 세상의 바벨탑인

'나'를 허물어 버린 자들의 삶인 것입니다.

그렇게 사십시다...

 

(빌 1:3-12)

3.내가 너희를 생각할 대 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간구할 대 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첫 날부터 이제 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6.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7.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8.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더 풍성하게 하사

10.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2.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