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10. 17:38ㆍ김성수목사님
94-1.행한 후에.(카텔가조마이κατεργάζομαιG2716)
에베소서89: 믿음의 방패 - 본문기록...
(엡6:13-16)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카텔가조마이κατεργάζομαιG2716) 서기 위함이라
카타κατάG2596;~아래+엘가조마이έργάζομαιG2038;노력하다,효과를 나타내다.에서 유래
기본어근 엘곤ἔργονG2041;노역,행위,수고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라고 되어 있지요?
여기서 ‘행한 후에‘라고 번역이 된 ’카텔가조마이κατεργάζομαι‘는
'완수하다, 수행하다, 성취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은 그들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분명 무언가 완수하고 성취해야 할 어떤 것이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
렇게 성도가 완수하고 성취해야 할 그 것을 잘 완성해 내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13절에 ’서기 위함이라’에서 ‘서다’라는 단어는 ‘히스테미ἵστημιG2476’라는 단어인데
그 단어는 ‘붙잡다, 고정하다, 이룩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하신 구원이라는 선물을 이 시간으로 제한 된 공간 속에서
우리의 이성과 육신을 가지고 경험하며 맛보며, 올바르게 인식하게 하기 위해,
다른 말로 꼭 붙들고 고정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마귀의 공격을 허락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군대에 가면훈련소에서 ‘모의 전투’라는 것을 합니다. 그리고 ‘을지훈련’이나 ‘화랑 훈련’ 같은 가상 전투 훈련도
합니다. 그러한 가상 전투 훈련은 병사들이 실전에서 용사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가상 적군’을 부대로 투입시켜서
전술과 전략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만일 경계를 소홀히 하거나 그 가상 적군들에게 당해서 작전 상황실에 모의 수류탄이
들어오면 그 부대는 징계를 받게 되지요. 마귀는 그렇게 우리 성도들의 훈련과 성숙을 위해 구속사 속에서 ‘가상 적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영적 전쟁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확정이 된 사람들의 성숙을 위한 싸움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고지를 점령한 승리자들로 전투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전신 갑주의 내용이 방어 무기 일색인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싸워서 쟁취해 내야 할 것이 있어서
전신갑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싸움은 이미 하나님께서 다 치르시고 승리하셔서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주신 것이고, 우리는 그 승리의 전리품을 잘 지키는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히스테미’‘고정하다, 확고히 붙잡다’입니다.
그러니까 마귀의 공격은 단순히 우리로 범죄 하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범죄를 하게 만들거나 의심, 타락, 절망 같은 것을 불어넣어서 우리가 우리 주님이 이루신 승리를 보지 못하게 만들고 그 것을 의지하지
못하게 만들며 불안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은혜의 선물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데에 최종적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이 마귀를 잘 이기고 있는 모습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실제로 죄로부터 자유 함을 누리고 거룩한 생명을 잘 누리고 있는 상태가 영적 전쟁에서 이기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그 전쟁에서 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여전히 범죄하고 다투고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절망하는 삶이 바로 영적 전쟁에서 지고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 전쟁에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지금 그 영적 전쟁에서 이기고 계신 분이신 지, 아니면 ‘전신 갑주‘고 뭐고 다 팽개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계신 분이신 지 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정리를 하면 우리가 지금 싸우고 있는 영적 전쟁은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하셔서 우리에게 선물로 허락하신 ‘구원‘이라는 것을 믿으며 누리며 경험해 나가는 싸움입니다. 그래서 그 싸움에서의 우리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냥 무턱대고 하나님께 다 맡기고(하나님의 방법으로 하겠습니다) 난 멍청하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 싸움이 아닌 것입니다.
구약의 이런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세요.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퍼부으셔서 애굽에게 항복을 받아내셨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에게 허리띠를 띠고 신을 신고 지팡이를 잡고 어서 이 애굽을 나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 소리를 듣고 ‘이왕 할 거면 끝까지 다 해주세요. 난 하나님께 다 맡겼으니까 하나님이 날 들어서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나 가나안까지 집어넣어 주세요.’ 이게 하나님께 맡기는 삶입니까?
어떤 것이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지요? 요단강이 아직 갈라지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건너라고 하시니 건너겠습니다.’
하고 건너는 것이 하나님께 맡기는 삶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다 갈라서 마른땅처럼 뽀송뽀송하게 만들어 주시기 전까지 전 절대 못 움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맡긴다는 말의 의미를 너무 안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맡긴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어떻게 결론을 맺으실 것을 알기에 난 그 것을 굳게 믿고
그렇게 실행에 옮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서 가나안으로 옮기실 때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원망하고 죄를 짓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광야에서 다 죽여 버리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구원을 하시려고 할 때 인간이 반응을 안 하면 그 구원은 취소시키신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하시고자 하는 자들은 반드시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그들의 손발을 움직이게 해서 가나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중적 상징
이스라엘의 출애굽 여정은 그러한 성도들의 구원의 여정을 다중 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의 마음을 전혀 무시하고 강제적으로 하나님을 따르도록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성령의 빛을 비추시고 좋은 것을 좋은 줄로 알도록 깨우치시고 하나님의 복됨을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동의와
간절한 열망과 주관적 의미의 믿음을 만들어 내시는
‘설복’을 통하여 하나님을 따르도록 하십니다. 설득해서 항복시키심.(설복,인격적으로)
따라서 복음의 빛에 비추임을 받은 우리 성도들은 반드시 손발을 움직여서 그들의 인생 동안에 해야 할 일들이 있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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