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23. 12:57ㆍ김성수목사님
115-3. ‘두렵고 떨림’.‘성실한 마음’‘목숨을 다하여’...
- 에베소서 강해(76). “ 종들아 상전들아 ”본문기록...
(엡6:5)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먼저 종들은 ““두려워하고 떨며”” 상전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종들에게 무엇을 ““두려워하고 떨라““고 하는 것일까요?
상전들의 매를 두려워하라는 것입니까?
여기에서 ““두려워하다””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프호보스”와
“떨리다”라고 번역이 된 “트로모스”가 똑같이 쓰인 곳을 몇 군데 찾아보면
그 의미가 명확하게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고전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고후7:15)
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프호보스(φόβοςG5401-두려움,공포,놀람), 트로모스(τρμοςG5156-떨림)””라는 단어는
-트레모τρέμωG5141;떨다,무서워하다..에서유래
바울이 그의 서신 서에서 즐겨 쓰는 단어들입니다.
그가 두렵고 떨었던 것과 다른 성도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어떤 것을 하라고 권고했던 내용은
사람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즉 “종들이 일을 할 때 그 상전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눈가림으로 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
“프호보스, 트로모스”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에서 일을 할 때 여러분은 직장 상사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해 일을 하셔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대사로 세상 앞에 서신 분들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의 삶이라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주인이 보든 말든 상사가 있건 없건 간에 자기가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해 해 내는 것이
두렵고 떨림으로 상전에게 순종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종들이 가져야 할 마음은 ““성실한 마음””입니다.
본문 5절을 다시 보시면 ““두렵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라고 나오지요.
여기서 ““성실함””““하플로테스ἀπλότηςG572-단순,성실,관용,소박...””는
- 하플루스ἀπλουςG573-함께접는,순진한 ,명확한...에서 유래
;1(연합을 나타내는 불변사)+플레코πλέκωG4120-엮다,땋다.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상대방을 위해 행하는 진지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들은 자기의 편안함을 위해서 주인이 안 보는 자리라고 해서 마땅히 자기가 할 일을
안 하고 꾀를 내어 딴전을 부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들은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일단 자기가 임금을 받고 자신의 시간을 주인에게 팔았으면
최선을 다해 그 주인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그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 할지라도 자신의 고용주의 시간을 사용할 권리가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주인에게 판 시간을 도둑질해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시다.
그리고 당신이 ‘그것은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한 일이었습니다.’라고 항변한다면 저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당신은 이 직장에 복음 전도자로 고용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주인의 시간을 도둑질해서 복음을 전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실 것 같습니까?
당신은 오히려 그러한 일을 함으로 해서 하나님의 복음 전파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어떤 사람이 주인의 시간을 도둑질하며 불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전하는 복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일할 시간에는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당신이 아무 말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게 오히려 삶으로 보여주는 복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과 시간 이후에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그 때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도록 하십시오.
그 때 당신은 삶과 말이 일치하는 진정한 복음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해 내는 것이 진짜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사도가 종에게 요구하는 것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입니다.
(엡6:6)
눈가림만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사실 정확한 번역은 ““목숨을 다하여””가 맞습니다.
종들은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들이 상전에게 복종하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이며 윤리적이며 사회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게 바로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어디 다른 선교지에 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처해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불평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을 하십시오. 그
게 바로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일을 마지 못해서,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서 하셔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런 소득도 보장되지 않는 노예들에게도 목숨을 걸고 순종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하물며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은 더 열심히 일하셔야 합니다.
(전9:10)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여러분은 열심히 일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종들은 ““단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상전을 섬기라””고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 보세요.
(엡6:7)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종들은 사람들의 시선과 사람들의 평가를 위해서가 아닌 주를 섬기는 마음으로 주의 평가를 목표로 삼아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상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9절을 보시면
(엡6:9)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종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바울은 상전들에게 ““너희도 이와같이 하라””고합니다.
종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성실한 마음으로, 단 마음으로, 주께 하듯, 상전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처럼 그와 똑같이 상전들도
두렵고 떨림으로 그리고 성실한 마음으로 그리고 단 마음으로 종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힘과 재물과 권세를 가지고 종들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고
사도는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게 ““공갈을(아페일레ἀπειλήG547-협박,까다롭게 위협하는..) 그치라””입니다.
상전들은 자기가 부리고 있는 사람들이 상전으로 말미암아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공포에 떨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빌레몬서에서 사도바울은
빌레몬에게 노예인 오네시모를 노예로 뿐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서 대하라고 권고합니다.
(몬1:16-17)
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휘페르,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이것이 상전과 종과의 사이에 존재해야 하는 관계인 것입니다.
여기에도 종업원을 부리시는 사장님들 계시지요?
그 종업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제 아시겠지요? 형제처럼 대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게 본문 9절 후반부입니다.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 이니라‘
너희 종들의 상전과 너희의 상전이 다른 분이 아니라 바로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말고
그 종들을 형제 대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그 하늘에 계신 상전이신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너희가 인간 세상에서 주종 관계로 엮여있는
그러한 인간관계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간관계를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몇 주간에 걸쳐서 공부한 성령 충만한 사람의 내용의 포인트입니다.
사도는 부부도 서로 복종하고 사랑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부모와 자녀도
““주 안에서”” 공경하며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종들도 주님께 하듯 상전에게 복종하라고 합니다.
상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모든 일상의 삶을 주님께 하듯 살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우리가 한 일에 대한 보상을 상대방 사람에게서 요구하는 삶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 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노조파업을 하겠습니까? 임금 착취를 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고 가신 첫째 되는 계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마22:36-38)
36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우리가 우리의 일상, 부부관계, 부모와 자식관계, 종과 상전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복 하는 삶을 살아내면
그 삶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인 것이고 그 삶은
곧 두 번째 계명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아무리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다 할지라도 공산당 혁명 때처럼
““왜 나는 이렇게 늘 가난하고 착취당하는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걸까? 저 부르조아들은 나보다
훨씬 덜 일을 하는데도 저렇게 기름기가 끼는데 왜 나는 죽어라고 일을 하는 데도늘 이 모양인가?
이 세상은 프롤레타리아에가 주인이 되는 새 세상으로 바뀌어야 한다.”” 하고 반역을 꿈꾸어서는 안 되는 분들입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제 친구 중에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간부를 하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어머니가 도시락 장사를 해서 겨우 겨우 생계를 꾸려가는 아주 가난한 친구였는데 늘 입에 달고 다니는 소리가 ““빨리 전쟁이 일어나서 이 모든 상황이 뒤집어져야 한다.””는 소리였습니다. 결국 학생운동 주동 혐의로 감옥에 가서
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다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 친구는 항상 모든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옆에서 보는 사람도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여기 이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처한 상황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순응하며 그 속에서 최대한 열심히 삶을 살아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그 수많은 노예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 더 열심히 주인들을 섬기면서도 그 안에 서
뿜어져 나오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한 영광으로 즐거워했듯이 여러분도 그렇게 여러분의 자리에서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한 영광으로 즐거워 하셔야 합니다.
그 때 세상은 여러분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들을 저 노예의 자리, 억압의 자리, 저 처절한 가난의 자리에서 저렇게 기쁘고 성실하게 만드는 힘이 뭘까?””
여러분은 세상으로부터 그러한 평가를 얻어내야 하는 분들입니다.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이방 나라의 노예가 되었지만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때 이방 나라 사람들이 그의 성실함에 감동하여 그를 총리에까지 추대를 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도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노예의 자리에서 포로의 자리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낸 사람들입니다.
1차 대전 동안에 러시아를 다스리고 있던 스탈린이 1차 대전 중에 러시아의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법을 완화하는 성명을 발표한 유명한 일화가 있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기독교인들은 눈엣가시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스탈린도 처음에는 기독교인들을 아주 혹독하게 핍박했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의 기독교인들이 자기의 자리에서 너무나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을 스탈린이 보았습니다. 나중에는 스탈린이 ““믿을 사람은 기독교인들밖에 없다””고 까지 말을 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은 스탈린의 공산주의에 항거해서 혁명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 핍박과 억압속에서 조용히 주님만을 두려워하며 최선을 다해 일상을 지켜낸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의 순종하는 삶이 수백대의 탱크와 수 천대의 전투기보다 더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을
직접 역사 속에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선동해서 교회 안에서 ““평등””을 외칩니다.
““평등”” 좋지요.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평등은 누구도 ““구원의 가능성””에서 차별이 없다는 것에서의
평등입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계급으로 살아야 한다는 평등이 아닌 것입니다.
상전과 노예가 사람과 벌레처럼 구분이 되던 고대 시대에 상전과 노예가 손에 손을 잡고 한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상전은 벌레만도 못한 노예를 형제로 깍듯이 예우해 주고
노예는 상전을 부모님 모시듯 충심으로 모시는 그런 그림을 한번 그려보세요.
세상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상전이어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모두가 종이 되어서도 안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잠시 잠깐 이 세상에서 맡겨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다가 저 영원한
세상으로 옮겨가는 나그네들일 뿐입니다. 여러분 몸속에 있는 세포 중에 7전 년에 있었던 세포가
한 개라도 있으신 분 손 들어보세요. 없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유한하며, 변하며 후패합니다.
그 땅에 있는 것들의 화려함과 초라함에 너무 흔들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영원히 변치 않는 저 천국을 준비하는 분들입니다.
비록 초라한 종의 자리일지라도 그게 여러분의 천국을 준비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자리를 지키십시오.
히브리서 11장의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항상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
만을 바라보며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을 하나님은 성도라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터는 없습니다.
우리는 저 견고한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며 걷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겨주신 그 상황과 환경에 불평하지 마시고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주님께 하듯 최선을 다해 해 나가십시오.
그게 바로 성령 충만한 사람의 삶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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