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성하면...하플루스

2013. 5. 4. 22:34김성수목사님

66.눈이 성하면...‘하플루스 ἁπλουςG573)’

 

    - 산상수훈(49) “눈이 성해야 온 몸이 밝다”본문중에서...

 

주님께서 ‘눈이 성하면’이라는 단서를 다시는데

그 ‘성하면’이라는 단어 ‘하플루스 ἁπλουςG573)’는 ‘

                                              - 하’라는 부정접두어와 ‘플레코(πλέκωG4120/엮다, 땋다)’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성하다’라는 말은 ‘엮지 않고 섞지 않은 것’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자마자 한 일이

무화과나무 잎사귀를 엮어서(타파르 תּפר/H8609/바느질하다) 치마(띠)를 해 입은 일이었던 것을 기억하세요.

섞거나 엮는다는 것은 순수하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눈,

즉 우리가 가진 그 영의 말씀이 섞이거나 엮은 것이 아니어야 빛을 올바로 비출 수 있다는 그런 말입니다.

 

한글 개역 성경에는 ‘온 몸이 밝으리라’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그 어구는, ‘그렇게 빛을 비출 수 있는(프호테이노스 φωτεινός/G5460) 몸을

                                                                    - 프호스φωςG5457에서 유래-불,빛

온전한 몸(홀로스 호 소마/)이라 한다’는 그런 말입니다.

‘홀로스(ὅλοςG3650) 호 소마σωμαG4983)’는 완전한 몸, 온전한 몸이라는 뜻입니다.

(עךןH5730, 에덴) 사치, 화려, 즐거움

                                             에덴(명남)은 아단(עךןH5727-부드럽다,즐겁다,스스로 즐겁게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사치, 화려, 진미(맛좋음), 즐거움, 기쁨'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눈을 진리로 갖고 있는 이는 어두움을 빛으로 비출 수 있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온전한 몸’이라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이미 앞의 5장에서 잘 설명해 주셨지요?

(마5:14-18)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 이로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 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우리를 가리켜 세상을 비추는 등대의 빛이라고 하십니다.

그 등대의 빛은 산 위의 동네를 밝히 드러나게 한다고 하지요?

 

그 산위의 동네가 ‘폴리스(πόλις/G4172’인데 그 단어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리고 그 ‘폴리스(πόλις/G4172)’라는 단어는

창세기 2장의 ‘에덴’이라는 ‘동산(간/ גן/H1588-정원,-뜰)’을 창설(나타, 심다, 박다, 고정시키다)하셨다는

어절에서 사용된 ‘간’이라는 단어를 옮겨 놓은 것입니다.

그 단어는 ‘울타리를 치다, 성으로 두르다;가난גנןH1598’라는 뜻과 함께 보호하다, 구별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께서 울타리를 두르고 구별해 놓으신 하나님 나라를 상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저 희생 제사나 열심히 드리고 하나님을 치성으로 섬기는 장소로만 보게 되면

그게 바로 어두움이라는 것입니다.

빛은 그 산 위의 동네, 예루살렘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밝히 보여주는 능력인 것입니다.

그걸 눈이라고 하고, 영이라고 하고, 말이라고 하고, 생명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바른 눈으로 진리를 분별하여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는 사람들의 그 행위를 착한 행실(선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떤 말을 덧붙입니까?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고 왔다’고 하십니다.

그 말은 율법이나 선지자가 나쁜 것이라서 없애버리고 새 것을 가지고 왔다는 말이 아니잖아요?

그 율법과 선지자를 진리로 밝히 비추어 주려고 왔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그 율법과 선지자 안에 담겨 있던 그 진리가 드러나면

그 율법과 선지자라는 껍데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어지지요?

그것을 완성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렇게 껍데기와 모형이 의미를 잃는 것을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의 사라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가 사라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게 될 것’이라 하신 것입니다.

 

율법의 일점일획이 다 진리로 깨달아지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날려 버릴 수 있는 것이 성한 눈이라는 것입니다.

그 눈이 우리에게 주어지면 우리는 즉시 우리의 현상계가 존재영역의 전부가 아님을 인지하게 됩니다.

이 유한의 세계를 조성한 근원의 터전인 무한의 영역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세상 속에서는

우리 자신의 존재성이 유한의 영역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음을 감지할 수 있게 되고

그 무한의 세계 또한 불가지의 추상성으로 덮여 있는 것처럼 인식됩니다.

그러나 차츰 그 나라는 내 마음 속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영적 눈이 성해지면

그러한 인간이라는 존재의 실존적 절망의 상태에 대해서 알게 됨과 동시에,

스스로의 힘으로 유한의 세계에서 무한의 영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원죄’라 불리는 인간 내부의 생래적 욕망의 실체에 관해서도 잘 알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에는 뼛속 깊숙이 실존의 한계에 사로잡혀있을 수밖에 없는

그 절망적인 옛 자아의 영향으로, 그러한 인간 실존의 충격적 자각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끊임없이 땅의 어두움으로의 퇴행 의지로 점철이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빛에 의한 자기 실존의 까발려짐이 심히 불편하고 불쾌하고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순간순간 인간의 의지와 종교 행위와 율법의 세계로 퇴행해 들어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면서,

수시로 종교의 탈을 쓰고 종교의 이름으로 다른 이들을 정죄하고 심판하고,

도그마(δόγμα1378)-법령,명령,교리등의 틀안에 인간의 관습과 행위와 의식을 가두어 버리고서

그것이 곧 무한의 신비, 생명에 참여하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진리라고 굳게 믿으며 욕망의 바벨탑을 쌓기도 합니다.

 

그래서 열을 다섯으로, 그리고 넷으로, 그리고 둘로, 그리고 하나로 완성하여 주어도

그것을 두려움으로 감추는 이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니 이러한 현상은 우리 안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마25:24-25 )

24.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하나를 받은 자가 그것을 주신 분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그 ‘하나’라는 것에 의하면

그것을 주신 분은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자기는 꼭 심어야 거두어지고 헤쳐야 거두어 진다는 인과응보의 눈으로 말씀을 보았고 그렇게 행했는데,

‘하나’를 받고 보니 그 ‘하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창조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전적 주권’이라는 은혜를 말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자기 자신 안의 어두움의 영역 속으로 감추어 버리고

자신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 과정은 우리 안에서 공히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 성도의 입을 통해서만 그 빛을 전달하시겠다는

진리 전파의 메커니즘을 확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빛을 받은 자는 절대 주인이 오시는 그날까지 그 빛을 감추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게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성도는 끝까지 자기에게 밝혀진 그 빛을 끊임없이 두려워하며,

다시금 땅을 향해, 현상계를 향해, 인간의 안목을 향해 곤두박질 칠 수가 없습니다.

성도는 그 두려움과 절망감과 상실감을 극복하고

자신의 눈으로 들어 버린 그 빛으로 산 위의 동네를 환하게 비추는 자로 살게 됩니다.

 

그건 필연적인 것입니다.

절대로 어두움의 땅에 그 ‘하나’를 감추어 둘 수 없는 자로 끌려가게 된다는 그런 말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빛을 비추는 온전한 몸으로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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