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가만두어라 "쉴레고

2014. 2. 18. 12:22김성수목사님

 

서울서머나교회

 

121. “가만 두어라”‘쉴레고συλλέγω....

- 예수님의 비유(1).”씨뿌리는 자의 비유”본문기록...

이 세상에 좋은 밭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를믿는 사람도 완전한 좋은 밭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 성도를 좋은 밭이라고 말씀하시고는 여전히 길가와 가시떨기와 돌 짝 밭의 모습을

그냥 놔두시고 지켜보시는 것입니까?

여러분, 밭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은 심겨지는 씨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 옥토로 만드는 것을 신앙생활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 돌 짝 밭 같고, 길가 밭 같고, 가시떨기 같은 내 속에 새 생명의 씨가, 오직 은혜로 심겨졌다는 것을 깨달아, 여전히 길가 밭이요, 가시떨기 밭이요, 돌 짝 밭인 자신의 모습을 폭로 당함에도 거기에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그 새 생명의 씨의 능력을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옥토입니다.

그들이 마지막 날에 반드시 옥토로 완성이 되어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에 의해서? 예수님의 은혜에 의해서.

하나님의 것을 내어 놓는 것이 열매입니다.자기부인과 십자가…..

우리를 예수 안에 넣어서 이 세상의 풍랑 위를 걷는 자로 만들어 주셨으면서도

이 세상의 풍랑 속에 그대로 놔두시며, 믿음으로 ‘난 이 풍랑을 벌써 이긴 자야’라는 은혜의 인식을 경험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처럼 우리 안의 가시떨기와 길가의 상태와 돌 짝 밭의 모습은 예수님의 은혜를 더욱 절감하라고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인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은 가시떨기와 돌 짝으로 인해 멸망에 처하게 되지만

우리 성도는 우리 안에서 폭로되는 가시떨기와 돌 짝의 모습을 통하여 한 발짝 더 예수님의 은혜 뒤로 숨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남은 자이며, 바로 그 모습이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옥토들에게 길가 밭의 상태와 돌 짝 밭의 상태와 가시떨기의 상태를 계속 경험하게 해

주시는 이유가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바로 밑에 붙어 있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 메시지로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두 비유가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29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가라지 들을

그냥 놔두라고 하십니다.

(마13:29)

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여기에서 ‘가만 두어라’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쉴레고’라는 단어는 ‘허락하다, 용납하다, 용서하다’라는

뜻이 포함된 단어입니다.

* 쉴레고(συλλέγωG4816) - 사전적 의미...;‘모으다,고르다,거두다’..

- 쉰σύνG4862;함께,곁에,같이..+레고λέγωG3004;‘앞에놓다’에서 유래

- 파생 로고스λόγοςG3056.(요1: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러니까 가라지는 나중에 뽑혀서 지옥 불에 들어갈 때까지 성도가 이 세상에서 용납하고 용서하는 자로 지어져 가는 길에, 필요한 도구로 존재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성도의 거룩 훈련에 소품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은혜의 배려에 대한 손길..그게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속에 들어 있는 가시떨기와 돌 짝 같은 가라지들 또한, 우리가 우리의 무력함과 티끌 됨을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배우는 데에 필요한 자기부인의 도구로 우리 안에 ‘쉴레고’ 허락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시로 길가 밭의 모습으로 폭로되는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게 되는 것이고,

수시로 돌 짝 밭의 모습으로 폭로되기도 하는 것이며,

수시로 가시떨기의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어쩔 뻔했는가에 대한 직접적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박힌 거룩한 씨가 그러한 모든 것들을 다 합력시켜 선으로 완성해 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폭로되고 부인될 때 우리 안에 있는 새 생명, 내 안에 사시는 예수가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게 예수가 맺는 진짜 열매입니다. 그들이 바로 옥토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저 밭일뿐입니다. 밭은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생명을 가진 씨가 밭에 떨어지게 되면 그 밭이 어떠한 상태라 할지라도 거기에서 생명이 열린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 언약에서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마음 밭을 완전히 새것으로 바꾸어 버리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우리가 이 인생 속에서 실재화하여 살게 되는 데 거기에 쓰이는 것이 가라지입니다.

그 가라지는 바로 우리 안에서 문득문득 발견되는 길 가 밭의 모습이요, 돌 짝 밭의 모습이요, 가시떨기의 모습인 것이며,

우리에게 허락된 사람채찍, 인생 막대기들인 것이며, 이 세상 전체가 다 그러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는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손해를 볼 수가 없습니다.

그 모든 가라지 들이 다 우리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오히려 그러한 가라지가 뽑혀지면 알곡이 함께 뽑히게 됩니다.

그 말은 가라지 같은 삶이 없이 열매 맺는 성도의 삶이 성공적으로 완성이 될 수 없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생명을 가진 씨앗은 비와 바람과 서리와 폭풍과 타는 듯한 뙤약볕을 잘 받아 그것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생명이 없는 죽은 흙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면 그냥 그것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뙤약볕이 내리쬐고, 서리가 내리고 있습니까? 잘 된 겁니다.

여러분은 그것으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니까요? 잘 참고 잘 견디세요.

여러분안의 거룩한 씨가 반드시 찬란한 열매를 맺어내시고야 마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도 밀알의 삶을 주신 것입니다.

내가 밀알로 죽어 열매를 맺은 것처럼 너희도 밀알로 죽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 인생의 가라지가 사용이 되는 것입니다.

(요12:24~26)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왜 나는 예수를 믿고도 여전히 이 모양인가? 때로는 그러한 미성숙함에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우시지요?

네, 여러분안에 있는 길가 밭, 돌 짝 밭, 가시떨기가 가라지로 폭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 죽어 버리세요. 자신에 대한 신뢰를 한 줌 또 놓아버리세요.

그리고 예수의 은혜로 한 발 더 가까이 가세요.

왜 예수를 믿는 나에게 이런 고난이 찾아오는가? 그러한 고난이 여러분을 죽고 싶게 만들지 않나요?

네, 그 때 죽으세요. 여러분이 그렇게 기대하고 바라던 세상에 대해 죽으세요.

지금 세상의 공격이라는 가라지가 여러분의 성숙에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여러분 자신과 이 세상을 부인하시면 됩니다. 그게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산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당신의 열심으로 우리를 좋은 밭으로 만들어 내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만 꼭 붙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