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순종하라“휘파쿠오ὑπακούω”,공경하라“티마오τιμάω”...

2015. 9. 25. 18:40김성수목사님

152.순종하라“휘파쿠오ὑπακούω”,공경하라“티마오τιμάω...

     - 에베소서75 자녀들아, 부모들아...본문기록

 

오늘은 그 하나님께서 주신 일반 법칙 속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먼저 자식에게 ““너희들은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그게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히십니다.

(엡6:1)

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기서 ““옳으니라””라고 번역이 된 ““디카이오스δίκαιοςG1342””는 본질적으로 옳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긋나기 전의 ““창조질서, 자연 질서” 말하는 것입니다.

어린 새가 알에서 나오게 되면 그 어미 새가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날라주고 그 새끼들을 뱀이나 독수리로부터 보호하지요?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혹시 알에서 방금 깨어난 새끼들이 엄마 새를 보호하고 먹여 살리는 새들도 있나요?

없습니다.

항상 어미는 자식을 양육하고 보호해야 하고 새끼는 그 어미의 뜻을 잘 따라야, 잘 자라게 되는 것이

바로 창조 질서, 자연 질서인 것입니다. 그것처럼 자녀가 부모에게 복종하는 것은 당연한 창조 질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옳다(디카이오스δίκαιος)”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10절에 있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구절에서 ““의인””이 ““디카이오스””입니다.

그러니까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타락하여 distort 된 세상에서 나와, 이제 의인이 된 자들에게서 반드시 나와야

하는 삶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타락한 세상, 영원히 하나님께 저주받을 세상의 구체적인 내용에 어떤 것이 들어 있는지 보시면

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

 

(롬1:28-32)

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보세요. 여기 무시무시한 불의, 추악, 탐욕, 시기, 분쟁, 살인 이러한 죄의 목록 중에 ““부모를 거역하는 자””가

들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배교의 시대, 큰 불경건의 시대, 불신앙의 시대에 죄인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될

목록 중에 ““부모를 거역하는 것““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 아이들이 어른들 무서운 줄 모르고 버르장머리가 없어진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것입니다.

 

(딤후3:1-5)

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말세 때 하나님의 대적들의 모양을 열거하면서

““너는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라고 강력하게 권고하는 내용 안에 ““부모를 거역하는 자””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삶 속에서 반드시 나와야 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아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디카이오스δίκαιος)””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순종하라”“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휘파쿠오ὑπακούωG5219”~의 아래에서 주의 깊게 듣고 따르다““라는 뜻입니다.

                    (사전참조) 휘포ὑπόG5259;아래에,아래로 향하여...+아쿠오άκούωG191(듣고,소문을 내다,보고듣다,깨닫다.).

 

그리고 계속해서 2절에 나오는 “공경하라”“티마오τιμάωG5091”

사상의 통제, 사상의 지배”까지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아래에서 그 분들이 하시는 말씀을 잘 듣고 부모로부터 사상의 통제와 지배까지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그 말은 전적인 순종을 하라는 것입니다.

(사전참조)“티미오스”(τίμιοςG5093에서 유래(값비싼,존경하는,사랑을 하는... ))는

                      “티메”(τιμήG5092에서 유래(댓가,지불된 돈,존귀,위엄...))는

                      “티노”τίνωG5099에서 유래(값을 치르다,형벌로써 벌을 받다...)

 

그러면 성경 안에서 ““왜 우리가 부모에게 순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지금 본 것처럼 그것은 하나님의 자연 질서, 창조질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면 일반 법칙을 세우시기를 새끼들은 부모에게 순종하며 그 부모로부터 양육을 받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마15:4)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딤전5:4)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

 

하나님은 율법을 통하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거듭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로서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부모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주신 분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님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가정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자녀를 다스리는 역할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분들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그들의 부모님을 하나님과 하나로 여겼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하나님의 복을 가로챘을 때 에서가 이삭에게 와서

““하나님의 축복을 제게도 나눠 달라고””부탁을 합니다.

그냥 하나님께 억울함을 호소하면 안 됩니까? 왜 꼭 육신의 아버지에게 와서 하나님의 복을 구합니까?

성도의 가정에서 아버지는 하나님의 대리인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해서 인간들에게 주시면서 꼭 육신의 부모님을 통해서만 주십니다.

이웃집 아저씨가 여러분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그 나라의 대통령도 그건 못 줍니다.

반드시 여러분의 생명은 여러분의 부모님을 통해서만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이 지구상에 있는 수십 억 명의 부모들 중에서

여러분의 부모님을 골라서 여러분을 태어나게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생명 전달의 대행자로 만드셔서 우리 부모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분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 육신의 부모님께

최선을 다해 순종하셨습니다.

 

(눅2:41-52)

41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 예수께서 열 두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48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 예수께서 한가지로(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께서 12살 되시던 해에 유월절 절기를 지키시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성전에서 유

대인 선생들(랍비들)과 성경 토론을 하시는데 부모들은 그 아들이 자기들을 좇아오는 줄 알고 하루 길을 갔습니다.

하루 길을 가다보니 아들이 없어져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와 보니 아들이 성전에 앉아서 유대인 랍비들하고 성경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부모님들이 예수님을 혼냅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길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 몰랐나이까?””하고

그 분이 이미 메시아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답을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부모님을 따라 나사렛으로 내려가셔서 부모님을 순종하며 받드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의 부모가 갖는 권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고 그 부모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분명 그 일이 그 분을 좇아 일어나게 될, 우리 성도들에게 유익이기에 그 삶을 미리 사심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바로 교회의 삶입니다. 그 삶은 교회에게 전가된 삶인 동시에 교회가 살아 내야할 삶인 것입니다.

이건 정말 쉽지 않은 말이지만 우리 교인들은 이 정도는 이미 다 알아 들으시리라 믿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객관적 관점이 죄들이 모두 멸해졌지만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주관적 관점에서의 죄와 여전히 싸워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삶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임과 동시에 우리가 추구하여 살아내야 할 삶이기도 한 것입니다.

 

잘 알아들으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 분의 삶을 전가시켜 주셨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그런 기독교는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해서 홍해를 건너고 광야 40년의 시험의 삶을 산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을 실패한 이스라엘, 즉 교회의 삶을 다시 완성시키시는

삶을 이 땅에서 살다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완성된 삶을 교회에게 덧 입혀 주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정확하게 애굽에서부터 출발하셔서 골고다에서 생을 마치십니다.

그리고 참 가나안인 하늘나라로 입성하셨습니다. 그 삶이 우리에게 전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출애굽을 하셨는가? 예수님이 헤롯의 칼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하셨다가

그 애굽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셨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그 사실을 가리켜 호세아서를 인용해서

““내가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는 말씀을 이루려 한 것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마2:14-15)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이스라엘,교회인 우리

 

(호11:1)

1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분명하지요? 예수님은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의 삶을 하루하루 성공적으로 살아서 우리 교회에게 덧 입혀주고 가신 것입니다.

그럼 우리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출애굽을 한 적이 있나요?

 

(창13:1)

1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 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을 때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갔다가 아내 사라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애굽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옵니다.

그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최초로 받았던 야곱은 출애굽을 한 적이 있나요?

야곱이 얍복 강을 건너기 전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씨름을 하시죠? 그런데 야곱이 얼마나 지독한지 절대 지지 않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환도 뼈를 치심으로 야곱을 죽이시고 새 사람을 만들어 얍복 강을 건너게 하십니다. 출애굽입니다.홍해

그리고 모세와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했던 것처럼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될 영적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새사람 60만과 여호수아도 역시 그들의 삶 속에서 출애굽을 경험합니다.

(수4:22-23)

22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2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그들이 요단 강을 마른땅처럼 건넌 것이 곧 뭐라는 것입니까?

출애굽 때 홍해를 건넌 것과 동일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교회를 상징하던 인물들, 민족들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처럼 출애굽의 삶을 삽니다.

그리고 출애굽 한 그들은 모두 광야의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도 역시 광야 40일을 사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교회가 광야에서 실패한, 그리고 실패할 모든 삶을 완전하게 완성 시키셔서

우리에게 전가 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 삶을 전가 받은 자들은 반드시 그 분의 삶을 추구하게 되어 있으며 실패하더라도 계속해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자신의 삶에 나타내기를 힘쓰게 됩니다.

 

다윗(예수님이 오시기전 1000년 사람)의 삶을 보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게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시22:1-18)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41:9)

9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유다이게 누구의 삶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똑같이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갔던 것입니다.

우리가 요즘 사도행전을 공부하고 있는데 누가가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쓰여 졌던

단어들을 그대로 가져다가 쓰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내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 예수께서 육신의 부모님에게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당연히 우리 육신의 부모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님들이 정말 예수님께 부당한 일을 한 번도 안 시키셨을까요?

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모든 일을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아이가 꼭 해야 할 것만을 시키며 애지중지 키우셨을까요? 아닐 겁니다. 아

마 불합리한 일도 많이 겪으셨을 것이고 억지스런 일도 많이 당하셨을 겁니다. 아까 누가 복음에서 보셨잖아요.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하루를 걸어가는 부모가 제대로 된 부모입니까? 적어도 밥 먹을 때는 돌아 봤어야지요.

그런데 주님은 ““그 부모에게 순종 하셨다””고 합니다. ““순종하다““””휘포탓소””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복종의 의미가 아닙니다. 고린도 전서에 바로 그 단어가 나오는데 한번 볼까요.

 

(고전15:28)

28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여기에 나오는 ““피조물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그 절대적인 복종””에 쓰인 단어가

바로 ““휘포탓소ὑποτάσσωG5293””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님에게 피조물이 하나님께 복종을 하듯 그런 절대적인 복종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순종과 공경이 바로 그 것입니다.

그럼 부모님의 뜻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가? 아니면 어디까지 복종해야 하며 어떤 것을 거절할 수 있는가?

그 복종에는 몇 가지 예외 사항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그 일반 법칙을 가지고 그 일반 법칙을 주신 분을 거역하게 할 때

자녀는 부모를 거역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녀에게 주신 ““복종””이라는 일반 법칙을 악용해서 그 일반 법칙을 주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막을 때 자녀는 공손하게 그 요구를 거절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지 말라고 부모가 강요할 때 여러분은 그 요구를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 일반 법칙을 주신 분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들을 강요받을 때

여러분은 그 요구를 정중히 거절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죄를 조장한다거나 부모가 자녀를 강압적으로 성폭행을 한다거나 할 때 자녀는 복종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 이외의 모든 것에 여러분은 부모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부모가 예수를 믿지 않는 분이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일반 법칙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에베소서 강해에 보면 그 분은 자신에게 주례를 부탁하러 오는 청년 커플들에게 ““만일 부모가 결혼식에 꼭 술을 내서 하객들을 대접하고 싶어 하시면 꼭 그렇게 하라””고 권한답니다.

““저희 교회 친구들도 많이 참석하는데 어떻게 술을 마시게 합니까?””라고 그 들이 반문하면

““당신 친구들 앞에서의 면목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종의 대상으로

당신 위에 세우신 부모님을 거역하는 죄를 짓지 마시오.””하고 정중하게 타이르신 답니다.

 

오늘 공부하는 내용이 부모를 무슨 씹다 버린 껌 취급도 안 하는 요즘 세대에는 다소 불편한 내용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우리가 회복해내야 하는 너무나 소중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어줍지 않은 종교적인 행위를 한답시고 너희들이 너희의 삶 속에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다면 그런 거 다 필요 없다““라고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23:23)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너희들 무슨 십일조 한답시고 까불고들 있는데 너희들이 마땅히 너희의 삶 속에서 우려내야 할

인, 의, 예, 신, 효 이런 것들은 다 어디 갔느냐?”” 하고 호되게 꾸짖으시는 장면입니다.

 

(막7:10-13)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13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 하느니라 하시고

 

너희가 부모님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난 하나님께 다 드리는 바람에 부모 공경할 것이 없어””

이런 짓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교 행위 한답시고 부모에게 해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훌륭한 신앙인이라면 부모를 무시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결혼식에 술 좀 내면 어때요? 부모님 뜻대로 술을 내면서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세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도 꼭 예수 믿게 해 주세요““ 왜 그건 못 합니까?

아니 그러지는 못 할망정 ““하나님 어디서 저런 부모님을 제게 주셔 가지고 이렇게 망신을 당하게 하십니까?””

 이건 마땅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어디에서도 ““믿는 부모에게만 순종하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냥 ““자녀들아 네 부모에게 순종하고 네 부모를 공경해라””입니다.

““내가 그 일반 법칙으로 너희의 삶을 이끌어 갈 거야““입니다.

그 명령에는 부모의 성품, 지식수준, 교양수준, 신앙의 유무 이런 것 조건으로 달지 않으셨습니다. 무조건입니다.

만일 신앙이 없는 부모님께서 신앙인으로서 부담이 되는 일을 자주 시키실 때,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방해가 되고 죄를 짓는 일이 아닌 이상 그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 목숨 걸고 달려들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부모의 신앙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으면서 그 신앙 없는 부모의 명령에만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싸움밖에 안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너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라도,

그게 네 부모일지라도 반드시 얻어내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네가 아무리 갖고 싶어도 네가 그 것을 가짐으로 다른 이가 아픔을 겪어야 한다면 눈물을 머금고

포기 해 주어라”” 이게 신앙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부모님이 여러분이 죽고 못 사는 애인을 절대 인정 안 하시고 결혼을 반대하고 계시다면

여러분은 그 결혼하시면 안 됩니다. 그건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대적하고 나서는 죄입니다.

정 포기하지 못하겠으면 양 쪽 부모님들이 흡족하게 허락하실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죽자 사자 기도하시면서 기다리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일반 법칙에 의해 하나님 나라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너무나 쉽게 자기의 욕심을 따라 그 법칙들을 무시하고 깨 버리기 때문에

이 세상이 이 모양인 것입니다.

그러한 세상 중에서 구별되고 구원받은 우리만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갖고 싶은 것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포기하는 모습을 좀 보여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예수는 예수대로 믿고 자기가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려서라도 꼭 하고야 마는 것이 그리스도인 입니까?

(고전10:23-24)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다른 이들이 아파하건 말건 무조건 얻어내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라면 이

런 구절들은 다 찢어 버려야 하겠네요?

중국의 전무후무한 대 석학이신 오경웅 박사는 아주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십니다.

그 분이 이미 중국 최고의 석학의 자리에 올랐을 때 역시 그리스도인이신 그 분의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어떤 여자를 데리고 오셔서 결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오경웅 박사는 두 말 않고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 부부가 결혼 한지 20년 째 되는 날 주위에 있는 지인들이 오경웅 박사께 물었답니다.

“박사님처럼 박식하신 분이 글도 모르는 저런 무학의 아내와 사시면서 불편하거나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 그 때 오경웅 박사께서 하신 말이 ””하나님은 나에게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아버지를 주셨소.

그리고 그 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하라고 하셨고 그 복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소.

나는 그대로 따랐고 지금 나는 이렇게 행복하게 복을 받고 살고 있소. 눈에 보이는

아버지에게도 복종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복종한단 말이오.““

오경웅 박사는 성경에 근거해서 그 분의 아버지를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섬겼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을 아버지를 통해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기보다는 내가 내 앞날을 계산해서 오히려 하나님을 타이르려고 합니다.

그럴 거면 말씀은 왜 공부합니까? 어차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거면서.

이런 사람들 있지요? ““부모가 내게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내 인생에 간섭이야?””

여러분 히브리어 ““바라크( בּלק)”” ““복““은 ””(네페쉬נפשׁ)““라는 ””존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바라크”“복”은 이 네페쉬가 존재할 수 있도록

하나님으로부터 그 네페쉬 속에 부어지는 생명력을 ““복””““바라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복은 바로 ““존재하고 있는 나””입니다. 그걸 누가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부모를 통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저 천국을 갈 수 있게 된 것입니까?

예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어떻게 믿게 된 것이죠? 내가 이성을 가진 존재로 ““네페쉬””로 이 땅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나를 그렇게 복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기까지

나를 태어나게 해 주시고 먹여 주고 입혀주고 양육 시켜 주신 분들이 바로 부모님이십니다.

비록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데 질적이며 양적인 만족까지 주시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지금 나는 이렇게 살아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이렇게 먹고 입는 것의 다소, 빈부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이 되지 않았습니까?

천국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게 다 우리 부모로부터 출발된 것입니다. 그런데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냐?””

이렇게 항의하는 사람들은 사람도 아니죠. 그런 사람은 입을 한 대 때려 주세요.

 

(롬13:1-7)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로마)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여기서 위에 있는 권세는 로마를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가 기독교인들에게 뭐 해 준 게 있어서 하나님이 로마의 권세에 복종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로마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로마의 권세에 복종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아니죠?

당시 로마의 권세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권세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 자녀들아 그 권세에 복종하라““ 고 하십니다. 심지어 그들에게 돈까지 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로마가 기독교인들에게 세금을 받아서 더 강성해 지고 부유해 지면 어떡하나””에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단지 관심이 있으신 것은 기독교인들이 그 사악한 로마에 복종하면서 그들의 거룩과 하나님의 자녀 됨을 빚어 가는 데에만

관심이 있으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당시 권세를 갖고 있던 로마에 복종하는 것에서 그들의 거룩을 빚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로마에 복종하면서 그들의 시선을 이 땅에서 하늘로 자꾸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노예들에게 ““얘들아 노예제도는 잘 못된 거야. 내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단다.

그런데 노예 제도가 웬 말이냐? 너희는 절대 주인에게 복종하지 말고 일어나서 싸워라”” 그러셨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노예들아 너희 주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하셨습니다.

노예들은 노예의 자리에서 악랄한 그들의 상전에게 복종함으로써 그들의 거룩을 챙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들아 주인에게 복종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부모님이 믿지 않는 분이십니까? 혹시 여러분의 부모님이 상식이 결여되신 분들이세요?

여러분의 생각에 그 분들이 로마보다, 고대시대 노예 상들보다 더 악랄하고 못 되 보이세요? 아니지요?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그 로마에도, 노예 상들에게도 복종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모님의 뜻에 복종하셔야 합니다.

설사 그 뜻을 좇느라 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여러분을 그리스도인답게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설사 부모님의 뜻을 좇느라

내가 교회 친구들에게 개망신을 당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여러분을 거룩하게 빚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목적지가 어디인가에 따라 복종할 수 있느냐와 없느냐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오로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을 신앙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부모와 끝까지 싸워서라도, 아니 도망가서라도

결혼 하셔야지요. 그렇지만 여러분이 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내 신앙의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는 것을 내 신앙의 목표로 삼고 있다면 부모에게 순종하셔야 합니다.

왜 나만은 절대 손해 보지 않으려 하고, 나만은 절대 눈물 흘리지 않으려고 하고 나만은 절대 순교하지 않으려 합니까?

부모님의 권위에 복종하십시오.

혹시 부모님 말 듣고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이랑 결혼했다가 여러분이 이혼을 하셔도 괜찮습니다.

““난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했어요.””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것이고 하나님은 여러분의 이혼을 통해서도 여러분의 거룩을 챙기실 것입니다.

거룩이고 나발이고 ““나는 무조건 행복해야 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