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복종하다“휘포탓소ὑποτάσσω”,질서“탁시스τάξις”...

2015. 9. 25. 18:32김성수목사님

151.복종하다“휘포탓소ὑποτάσσω”,질서“탁시스τάξις”...

                    - 에베소서74 에베소서74 남편들아, 아내들아 ..본문기록

 

그 정의에 근거해서

구체적으로 아내와 남편의 역할과 의무와 책임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엡5:22-24)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성경은 아내들에게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하고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당시 여자들은 남자의 가재도구처럼 여겨졌던 때였습니다. 여자는 물건처럼 취급되어졌고 아무런

법적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유대인들이 매일 아침 의무적으로 드렸던 기도문에

“하나님 저를 이방인이나 종이나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이 제일

처음 기도를 여는 문구였습니다.

심지어 로마인들은 여성의 지위를 가리키는 말로 ““임베실리타스””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 단어에서 영어의 ““imbecile"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imbecile이 무슨 뜻입니까?

“저능한 사람, 바보”라는 뜻입니다. 당시에 여자들은 그렇게 학대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사도 바울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오해해서 많은 이들이 아내를 장악하고 억압하고 그 위에 폭군으로 군림하는 것의 핑계 구절로 삼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쓰인 “복종하다”휘포탓소ὑποτάσσωG5293는 단순히 굴종의 뜻이 아닙니다.

                                        휘포ὑπόG5259;아래에,아래로 향하여...+탓소τάσσωG5021:정돈,배열하다,결정하다..(사전참조)

이 “휘포탓소ὑποτάσσω”라는 단어 안에 들어 있는 “탁시스τάξιςG5010”는 “질서라는 뜻입니다

                                                                                                               탓소에서 유래;질서 정돈,계승,직무상의 위계,반차...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은

아내들이여, 질서를 위해 남편을 머리의 자리에 놓아두라”는 것입니다.

막무가내의 굴종이나 예속, 종속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갈3:28)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분명 바울은 이렇게 갈라디아서에서 여자는 남자의 가재도구가 아니라 남자와 하나인 동등한 존재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자들에게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라고 말씀을 했을 때는

사도 바울은 여기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전11:3,8-9)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보세요, 여기 어떻게 위계질서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하나님-그리스도-남자-여자 의 순 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에서 나왔기 때문에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는 것입니다.

(딤전2:11-14)

11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12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이 질서를 깨 버린 것을 우리가 ““죄””라고 부릅니다.

여자는 창조 질서 상 남자에게 복종하여 뱀이 선악과를 따먹으라는 유혹을 했을 때

남자에게 상의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편의 권위를 무시하고 혼자 결정을 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남자에게 ““당신도 먹으라.””고 남자의 권위를 타고 넘어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자를 저주하실 때 ““남자는 너를 다스리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해 주십니다.

(창3:16)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남편은 너를 다스리고 너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질서를

깨 버렸기 때문에 너는 남편을 장악하려고 하고 남편은 너를 계속해서 다스리려고 하는

그 죄의 양상이 계속해서 너희 가정에 있게 될 것이라””는 엄청난 저주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가정들이 그렇게 혼란 속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바로 그 ““죄””에서 건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태초의 질서를 회복한 모습으로 세상 속에, 서야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들은 창조의 질서 상 먼저 창조 된 남자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남편들은 그 아내를 잘 다스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려 하는 내용입니다.

실제로 해부학적으로도 남자가 여자보다 강하고 힘이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생리학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는 여자를 다스리고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하라고

그렇게 해부학적으로나 생리학 적으로도 창조를 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자를 ““남자보다 연약한 그릇””이라고 칭한 것입니다.

 

(벧전3:7)

7 남편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도 아내가 여성으로서 자기보다 약한 그릇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해하시면 좀 더 쉬우실 겁니다.

 

여자와 남자는 구원이라는 커다란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하나님으로부터 각기 다른 역할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남편은 앞에서 끌어 줄 수 있도록 권위와 힘과 포용력을 받았고 아내는 남편을 도와

이 가정이라는 열차가 목적지까지 잘 도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순종과 섬세함과 지혜를 받은

것입니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그 역할을 잘 해내지 못하면 그 열차는 탈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남편과 아내가 함께 몸을 싫은 구원의 열차가 목적지까지 잘 도착하기 위해 남편은 선장이

되고 아내는 항해사가 되어서 함께 열심히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가정이며 결혼인 것입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맡은 역할은 국회에 국회 의장을

뽑아서 그에게 권한을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국회 의장은 그 권한으로 국회의 원활한 운영을 도모하는 것이지 그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다른 의원들을 강압 적으로 누르는 데 쓰지 않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의원들도 그 국회의장이

자기들보다 더 똑똑하고 잘나서 그의 의사봉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의장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의장이 일어서라면 일어서는 것이고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하라면 경례를 하는 것이고 선서를 하라면 선서를 하는 것이고 발언을 하라는

명령이 없을 때는 입을 다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의 복종이라면 한번 해 볼만 하지 않습니까?

전혀 꿀릴 것 없는 복종이잖아요.

신학에서는 이러한 아내의 남편에 대한 복종을 ““경륜 적 삼위 일체”” ““economic trinity"에 견주어서

설명을 합니다.

삼위 하나님은 우열이 있으신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 백성들의 구원””이라는 커다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성자 하나님께서 성부 하나님께 자발적인 복종을 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도 그 구원이라는 목적을 위해 성자하나님과 성부 하나님께 자발적인 복종을

하신 것을 우리가 경륜 적 삼위일체라고 부르는데

남편과 아내의 역할 중에서 아내의 역할인 복종의 역할이 바로 그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복종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이해가 가시죠?

그러니까 아내들의 복종은 단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역할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바울은 본문 23절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엡5:23)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머리와 몸은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가 지시하는 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몸은 정상적인 발육을 할 수도 없고 정상적인 생활도 불가능합니다.

예전에 월드컵에서 페널티 킥을 실패한 멕시코 축구 선수가 어떤 광적인 축구 팬의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공은 다리가 잘 못 찼는데 화가 나면 그 다리만 때려주던지 아니면 그 다리만 잘라 버리지 않고 왜 그 선수를 죽여 버립니까? 다리와 나는 따로 분리해서 존재할 수도 없고 생각되어질 수도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내리는 명령을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뇌성마비라고 합니다. 아내가 머리인 남편의 뜻에 복종하지 않게 되면

그 가정은 뇌성마비 걸린 사람처럼 갈팡질팡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는 것은 우리가 전에 자세하게 공부를 했으니까 성경 구절만 몇 구절 살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골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엡4:15-16)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여기 보세요. 우리 지체인 교회가 머리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나오지요?

왜 우리가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합니까?

우리는 그 머리의 뜻에 순종함으로 ““자라나게””되기 때문입니다.

몸은 머리에게 복종할 때 정상적인 발육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잘 성숙해 가기 위해서는 가정 속에서 머리인 남자의 권위에

복종하는 훈련 속에서 자라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 남아서 광야 인생을 살아야 하는 목적을

우리가 잘 define하고 있지 않으면 이 말씀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남아있는 유일한 목적은 ““거룩””입니다.

나의 더러운 육신이 죽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게 되는 ““거룩””으로의 경주가

우리 성도들의 존재 목적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많은 훈련과 연습과 고난과 환난이 동원이 됩니다.

모든 성도들은 그 거룩으로의 경주를 힘써 달려야 하는데 성도들 중에

““아내들””의 거룩은 바로 ““남편에게 복종함””에서 훈련이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