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2 사랑은 감정이전에 의지이며 선택이며 의무요 책임입니다.

2013. 8. 5. 12:34김성수목사님

85-2.사랑은 감정이전에 의지이며 선택이며 의무요 책임입니다.

- 창세기 강해말씀 ‘가죽옷을 입게 된 자들의 삶’본문기록...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열심히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아니 우리가 그 은혜의 복음을 정말 알아들은 사람이 맞는다면

그 노력은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다른 이를 밟거나 다른 이의 아픔을 모른 척하며 지나가는 자가 아니라

자기의 소유를 털어 원수를 도와주는 선한 이웃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사랑하셔야 합니다.

그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요 책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성도가 되신 분들이 맞으시다 면

여러분은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분들이고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가시적인 증거가 바로 이웃 사랑인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남을 밟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 속에서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성경의 모든 계명을 ‘이웃 사랑하기‘라고 한 마디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왜 그가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그 소중한 계명을 빼고 그냥 ’이웃을 사랑하라‘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계명을 정의했을까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그냥 ’이웃 사랑하기‘라고 말한 것입니다.  

 

(약2:8‐9) 

8 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그것은 잘 하는 일입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똑같은 의미로 온 율법을 한 마디로 ‘이웃 사랑하기’라고 정의를 합니다.  

 

(갈5:13‐15) 

13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14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15 그런데 여러분이 서로 물고 먹으면, 양쪽 다 멸망하고 말 것이니, 조심하십시오.  

 

서로 물고 먹는 삶을 사는 사람은 멸망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 서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사람이

만일 형제 사랑하기를 하지 않는 다면

그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요일4:7‐12)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10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속죄제물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이 세상에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성령을 받게 되면 권능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라’고 확고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증인으로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이 안 나오는데 어떻게 사랑을 합니까? 그런 분들 많으시지요?

사랑하고 싶고 용서하고 싶은데 감정이 내 의지를 따라주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래서 어떤 분들은 자기의 감정이 움직일 때까지 사랑하기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성경이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감정 이전에 의지이며 선택입니다.   감정에 의해 나오는 것은 ‘like''좋아함’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물론 사랑의 한 요소로 감정이 들어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랑 안에는 감정과 함께 의지와 선택이라는 요소도 들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예로 들어볼까요?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미워하십니다.

성경은 분명 그렇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모두 다 죄인들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를 미워하시는 상태에서 사랑을 하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세요?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에 의해, 미워해야 할 자들을 사랑하시기로 선택을 하신 것입니다.  

 

제가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개를 좋아합니다.

그 사람이 개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집을 잘 지켜줘서, 맛있어서, 등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개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

병이 걸려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개가 자기에게 주는 어떠한 유익 때문에 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개의 시중을

드는 것이 귀찮아서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럼 또 다른 사람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수의사는 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개를 보면 아무런 감정이 없어요.

오히려 어렸을 적에 개에게 심하게 물린 기억 때문에 개를 보면 혐오감이 듭니다.

그러나 수의사는 개를 정성스럽게 돌보아야 합니다. 그게 자신의 의무이며 책임이고 자신이 수의사가 될 때

‘짐승을 사랑하겠노라‘는 선서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밥을 주고 약도 먹이고 최선을 다해 그 개의 질병을 고치려 노력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 수의사의 행위는 위선이며 의무이며 책임인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은 그 것도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예를 들어 드리지요. 우리 교회 지영 이는 개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리고 개를 아주 사랑합니다.

그래서 마치 자기 자식처럼 개를 키웁니다. 지영 이는 개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사랑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랑입니다.

물론 그렇게 감정까지도 포함된 사랑을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 땅에 있는 오염된 육체를 갖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일차적으로 요구하는 사랑은 감정까지

포함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에게서 나오게 될 사랑은 감정까지 포함된 사랑이 맞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죄에 오염된 육신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감정까지 포함한 사랑으로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실력이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일차적으로 요구하는 사랑은 선택적이며 의지적 부분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원수를 좋아하라‘고 하셨으면

우리는 큰일 날 뻔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네 감정이 지금은 그 상대방을 좋아하지 못하더라도 너는 네 의지를 발동하여 사랑의 선택을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남편이 혹은 아내가 혹은 이웃이 죽이고 싶도록 미울 때 그를 향해 도끼눈을 뜨는 대신 커피를

한 잔 타서 은근한 미소와 함께 전해주는 것을 의지적 사랑이라고 합니다.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미운 감정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내 의지를 발동하여 사랑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감정을 좇아 살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살게 된, 의로운 흰옷을 입고 있는 자라는

신분의 확인이 그러한 선택적이며 의지적인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이해하는 그 깊이만큼 인간들은 그 분량만큼의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숙해 지다보면 정말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고

결국 나의 감정까지 동원된 그런 멋진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남을 해코지 하는 그런 티끌의 자리에서 벗어나 오히려 나의 옷을 벗어남의

부끄러움을 가려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가 된 사람들 아닙니까?

잘 참고 잘 견디시며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의 사랑하는 모습으로 보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