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0. 11:13ㆍ김성수목사님
100. 서원(네데르נךר)과 제물(뛰시아θυσία),성령충만...
- 사사기(22)‘입다의 서원’본문기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제사의 종류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번제와 소제, 속죄제와 속건제,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펴 볼 화목제입니다.
이 제사들은 각각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속죄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이야기를,
속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의 이야기를, 화목제는 완료, 승천의 이야기를 그 내용으로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 화목제에는 감사제와 서원제, 그리고 낙헌제라고도 하는 자원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화목제의 제물은 다른 제사와는 달리 제사를 드린 자와 제사장, 그리고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화목제의 현실을 그림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 출애굽기 24장입니다.
다른제사는 못먹게 되어있습니다.화목제만 먹음..
(출24:5-11)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 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그 피를 단에 뿌린 모세와 70장로들이 하나님께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손을 대지 않으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는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게 바로 화목제라는 제사가 담고 있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화목제는 속죄의 목적으로 드려지는 제사가 아닙니다. 화목제는 죄인들의 속죄가 완료되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간의 화목이 성취된 것을 선포하며,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열심에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성도들의
천국 혼인잔치를 그 내용으로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목제에 감사제와 자원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자원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원이라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해 드릴 테니 내가 원하는 것을 달라는 거래용으로 쓰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화목제의 하나인 서원이라는 것은 죽어야 할 나를 위해 흠 없는 제물을 보내주심으로 우리에게 완료된 구원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
다른 말로 자원하여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게 서원입니다.
무엇을 요구하기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측에서 완료시켜 놓으신 어떠한 사건에 대해 감사와 찬송으로
화답을 하는 것이 화목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화목제, 특히 서원제의 제물은 첫 새끼로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
(레27:26)
26 오직 생축의 첫 새끼는 여호와께 돌릴 첫 새끼라 우 양을 물론하고 여호와의 것이니 누구든지
그것으로는 구별하여 드리지 못할 것이며
그렇지요? 잘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제물은 단순히 대속의 대가가 아닙니다.
제물이라는 것은 대속의 대가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거룩한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정하고 더러워서 차마 받을 수 없는 것들 대신에 그 제물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물을 드린 자를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제물과 동일시해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구원이라 하고 은혜라 합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을 해 보자고요.
제물이 하나님에게 바쳐져서 하나님의 철장에 맞아 죽는다는 것은 형벌의 의미보다는 피조물의 육적 자아가
파기되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력으로 채워질 때
비로소 존재일 수 있고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하나님께 바쳐져서 육적 자아가 죽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피조물의 대표로 육신을 입으시고 그 피조물의 구원의 과정을 먼저 걸어가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지금도 그 부활의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영원히 육신을 입으시기로 결정을 해 버리신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바로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요.
그러한 구원의 역사적 과정을 성경의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을 해 주시기 위해 이스라엘의
처음 것들은 전부 하나님께 구별하여 바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처음 것이 바쳐짐으로 해서 죽어야 할
자들이 살아난 창세전 언약의 성취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출13:12-16)
12 너는 무릇 초 태생과 네게 있는 생축의 초 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3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너의 아들
중 모든 장자 된 자는 다 대속할 지니라
14 장래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찜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15 그 때에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낳은 것을
사람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낳은 것까지 다 죽이신 고로 초 태생의 수컷은 다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리고 우리 장자는 다 대속하나니
16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신명기에도 똑같은 명령이 나옵니다.
(신15:19)
19 너의 우양의 처음 난 수컷은 구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 네 소의 첫 새끼는 부리지 말고
네 양의 첫 새끼의 털은 깎지 말고
이렇게 이스라엘의 처음 것은 식물이건 가축이건 전부 하나님께 갖다 바쳐야 합니다.
그건 출애굽기 13장의 말씀처럼 첫 새끼가, 죽어야 할 이스라엘을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져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자체로는 너무나 더러워서 하나님의 것으로 바쳐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장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더러운 백성들을 품에 안으시고 하나님께 바쳐진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부정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장자들로 편입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모든 처음 것들이 하나님께 바쳐져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은 오직 하나님의 장자만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제물이 되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성을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그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동생들,
즉 성도들이 하나님에게 거룩한 제물로 드려질 수 있는 신분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은혜의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첫 새끼가 하나님 앞에 드려짐으로 말미암아 나머지 다른 제물들이 그 첫 새끼 안에서 제물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첫 새끼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다른 제사에서는 꼭 첫 새끼가 아니더라도
제물로 쓰여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하게도 화목제의 제물은 절대로 첫 새끼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나 셋째는 괜찮습니다.
우리는 조금 전에 화목제는 속죄 제물로 오신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해 완료된 속죄와 그로 말미암아 완성되게 되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즐기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왜 또 제물이 필요한가요?
그리고 그 제물을 이웃과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왜 그런 번거로운 제사가 또 있어야 하지요?
여러분, 예수라는 맏아들 다음에 줄줄이 살아나는 자들이 있지요? 그들이 교회입니다.
(고전15:20~23)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맏아들의 동생들에게 똑같은 제물로서의 삶을 요구하십니다.
(롬12:1)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제사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뛰시아θυσίαG2378-희생,제물..’가 제물이라는 단어입니다.
뒤오θύωG2380에서 유래-‘달려들다’(거친 숨을 쉬다,불다,연기내다)
함축적으로 제사드리다,제물을 드리다,살해하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맏아들의 동생들에게 제물의 삶을 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당신의 맏아들처럼 당신에게 바쳐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하나님 앞에 자격 있는 제물이 되라는 권면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우리를 거저
하나님의 제물로 받으셨으므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 됨’이라는
방향성과 지향성을 갖고 살아가게 될 것임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자기부인의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라는 존재의 육적자아가 부인되고 그 안에 사시는 예수만이 드러나게 되는
자기부인의 과정이 성도의 삶 속에서 나타나게 된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맏아들에 의해 완료된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즐기는 화목제의 현장에 맏아들이신 예수의 동생으로
입적이 된 ‘나’라는 제물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그림이 성경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렇게 맏아들이신 예수가 가신 길을 좇아 자기를 부인당하고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져서 다른 이들을 위해 ‘나’를 양식으로 주는 하늘 백성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 나라의 존재양식입니다. ‘나’가 비워져서 상대방의 배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것이 아닌 제물, 즉
구원받은 ‘나’가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지고 그들이 나를 먹고 배가 부르게 되는 잔치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 나라입니다.
(롬 8:29)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게 우리는 ‘나’라는 존재의 육적 자아가 부인되어져 가는, 역사 속에서의 구원의 현재 시제를 살게 되는
성도이기에 세상 속에서의 고난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밟히고 빼앗기고 비워지고 무장해제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사는 하나님
백성들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그렇게 처음 것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거저
하나님의 제물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우리를 첫 열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처음 것의 삶을 그대로 답습하여 살게 되고 결국에는 처음 것으로 완성이 되는 것이 성도라는 말입니다.
(약1:18)
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맏아들이 가신 그 자기부인의 길, 십자가의 길을 실제 화하여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히브리서 기자는 교회를 장자들의 총회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장자이신 예수 안에서 거저 구원을 얻은 입양된 장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진짜 장자가 가신 그 길로 좇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화목제의 현장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서원입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해 서원은 하나님에
의해 내가 부인당해 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에게 내 것을 빼앗기는 것이지 내가 무엇을 하나님께
드려서 그것으로 보상을 받는 종류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한 화목제의 현장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서원입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해 서원은 하나님에
의해 내가 부인당해 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에게 내 것을 빼앗기는 것이지 내가 무엇을 하나님께
드려서 그것으로 보상을 받는 종류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입다가 전쟁을 하러 나가면서
하나님에게 엉터리 서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을 볼까요?
(삿11:29-32)
29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
그렇지요? 입다는 제사를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서원인 줄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입다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서원을 한 시점이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한 뒤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여 입다가 성령 충만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입다가 엉터리 서원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 충만이라는 것은 꼭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어떤 존재가 대단하게 훌륭한 삶을
보여줄 때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처음 자리를 폭로하시며 그러한 추악한 자를
덮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밝히 드러나게 될 때 그것을 성령 충만의 상태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이 땅에 오셔서 하는 일이 뭡니까?
예수님이 가르치신, 창세전 언약의 성취에 대한 교훈을 다시 떠오르게 하시고, 죄와 의와 심판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가르치시는 역할로 성령이 오신 거잖아요?
따라서 역사 속에서의 성령 충만은 하나님께서 인생과 역사에게 행하신 일을 오롯하게 드러내는 일에 동원이
되는 피조물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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